[부산 수제맥주 총정리] '비어' 있는 부산, 입이 즐겁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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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야생 효모·미생물로 빚은 사워 맥주
독일 양조장 후손이 직접 만드는 페일라거
양조장 6곳의 수제맥주 맛볼 수 있는 펍도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사우어 영도’. 신맛의 사워 맥주와 어울리는 해물찜·문어요리 등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사우어 영도’. 신맛의 사워 맥주와 어울리는 해물찜·문어요리 등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온 세상이 펄펄 끓는 한여름이다. 각자 무더위를 이겨 내는 노하우가 있을 터. 고단한 하루의 끝에 맥주 한 잔은 주객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꿀팁이다. 호프집 생맥주, 편의점 캔맥주도 나쁘지 않지만 이왕이면 브루어(맥주 양조인)가 만들어 특색 있는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면 좋겠다. 우리나라 수제맥주 양조장은 200여 곳. 부산은 10곳 남짓이다. 부산 사람이나 부산 여행객을 위해 부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부산표 맥주’를 소개한다.

부산의 효모·미생물로 빚은 맥주

“맥주 종류는 크게 라거, 에일, 그리고 와일드로 나뉩니다.” 와일드웨이브 김관열(39) 대표의 설명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와일드 비어(Wild Beer)라…. 웬만한 맥주 마니아가 아니라면 생소한 단어다. 정제된 효모를 쓰는 라거·에일과 달리 와일드는 이름처럼 야생의 효모를 활용한다. 김 대표가 한국다운 맥주, 부산스러운 맥주를 고민하다 ‘와일드’로 방향을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나라마다 유명한 맥주가 있는데 모두 그 나라의 효모를 사용한다”며 “우리나라는 곡물과 홉 등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 효모·미생물을 써서 고유의 특색을 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와일드웨이브는 전국 최초 와일드 비어 전문 양조장이다. 김 대표가 독일에서 유학하며 접한 벨기에 브뤼셀 지역의 전통 양조 방식에 가깝다. 제품 대부분이 와일드 계열이고 그중에서도 신맛의 사워(sour) 맥주가 주를 이룬다.

김 대표는 아직 30대지만 수제맥주 경험은 넓고 깊다. 2013년 서울의 한 수제맥주 매장 오픈멤버로 처음 발을 들인 뒤 이듬해 부산 갈매기브루잉 등 여러 수제맥주 양조장 설립에 참여했다. 유학을 다녀온 뒤에는 본인의 뜻을 펼치기 위해 2019년 가을 와일드웨이브에 합류하며 대표 자리에 올랐다.

양조장의 오크통 발효조를 애지중지 관리하는 와일드웨이브 김관열 대표. 양조장의 오크통 발효조를 애지중지 관리하는 와일드웨이브 김관열 대표.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의 스테인리스 발효조 설비. 올해 초 해운대구 송정역 인근에서 기장군 정관신도시로 확장 이전했다.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의 스테인리스 발효조 설비. 올해 초 해운대구 송정역 인근에서 기장군 정관신도시로 확장 이전했다.

정규 라인업 중 ‘설레임’은 와일드웨이브를 대표하는 사워 맥주다. 기본 재료만 썼는데 과실을 넣은 것처럼 진하게 올라오는 레몬향이 신기하다. 유산균 등 다양한 미생물로 발효시킨 결과다. 패션프루츠를 넣은 ‘패셔네이드’는 에이드처럼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다. 기장 꿀을 넣은 라거 ‘서핑하이’, 헤이즐넛이 들어간 에일 흑맥주 ‘다크웨이브’도 특색 있다.

동해선 송정역 인근에서 양조장과 펍을 운영하던 와일드웨이브는 올해 초 양조장을 기장군 정관읍으로 확장 이전했다. 그리고 최근 영도구 봉래동에 ‘사우어 영도’라는 레스토랑을 열어 사워 맥주 알리기에 나섰다.

건물 제일 꼭대기에 자리한 사우어 영도는 공간 자체도 인상적이다. 거대한 배처럼 메인 테이블이 자리했고, 주방을 비롯해 전체적인 내부 콘셉트도 선박 느낌을 살렸다. 대형 유리창 너머로 부산대교 건너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 원도심 시가지와 북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산물 위주의 음심은 사워 맥주의 신맛과 잘 어우러진다. 대구·새우·조개가 들어간 프랑스식 해물찜 ‘해산물 빠삐요뜨’, 칠리버터에 구워낸 문어 요리 등과 마리아주를 이룬다.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에는 스테인리스뿐만 아니라 오크통(250L) 발효조 255개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4년까지 오크통 안에서 숙성된 맥주를 혼합해, 와인 같은 ‘프리미엄’ 맥주를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더와일드웨이브’, 순천 황매실을 넣은 ‘데이라이트’, 제주 금귤이 들어간 ‘골든 오차드’, 블랙커런트를 넣은 ‘레드홀릭’ 등 4종이 있다.

와일드웨이브의 프리미엄 맥주 4종. 1~4년 오크통에서 숙성한 맥주를 블랜딩한 ‘더와일드웨이브’(왼쪽 2번째)가 가장 고급 맥주다. 와일드웨이브의 프리미엄 맥주 4종. 1~4년 오크통에서 숙성한 맥주를 블랜딩한 ‘더와일드웨이브’(왼쪽 2번째)가 가장 고급 맥주다.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동해선 오시리아역 인근에 위치한 ‘툼브로이’ 양조장 겸 브루펍. 독일 현지 양조장의 상징을 그대로 가져와 건물 전체를 파랑과 노랑 조합으로 꾸몄다. 동해선 오시리아역 인근에 위치한 ‘툼브로이’ 양조장 겸 브루펍. 독일 현지 양조장의 상징을 그대로 가져와 건물 전체를 파랑과 노랑 조합으로 꾸몄다.

독일 사람이 만든 정통 독일 맥주

‘맥주의 나라’ 독일의 정통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역시 부산이다.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독일인이 운영하는 양조장이 해운대구 송정동에 문을 열었다. 동해선 오시리아역 인근에 위치한 ‘툼브로이’는 독일 남부 소도시 뮐도르프에서 17세기 말부터 운영해 온 양조장(‘툼브로이’)의 역사를 잇고 있다. 양조장 가문의 막둥이인 안드레아스 마인트(34) 오너브루어가 아내 이정민(30) 이사와 함께 알뜰살뜰 차린 공간이다.

독일 정통 맥주의 특징은 ‘맥주순수령’에 따라 물·맥아·홉·효모만 써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쌀·물·누룩만으로 빚은 전통 막걸리인 셈. 독일의 맛을 한국으로 들여오기 위해 안드레아스는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쳤다. 고향 인근 마을 양조장에서 수년간 일하며 60여 년 경력의 브루어로부터 양조법을 전수 받았다.

이 이사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지금도 꾸준히 메신저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주기적으로 독일에 술을 가져가 맛을 체크하고 있다”며 “저희 레시피의 비결은 ‘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맛의 안정화를 위해 숙성을 오래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툼브로이 2층 브루펍 안쪽 자리에선 양조장 내부가 내려다보인다. 헬레스·바이스·둔켈 맥주(왼쪽부터)와 유럽식 돈가스 ‘슈니첼’. 툼브로이 2층 브루펍 안쪽 자리에선 양조장 내부가 내려다보인다. 헬레스·바이스·둔켈 맥주(왼쪽부터)와 유럽식 돈가스 ‘슈니첼’.
독일 현지 툼브로이 양조장의 6대손인 안드레아스 마인트 툼브로이 오너브루어. 툼브로이 제공 독일 현지 툼브로이 양조장의 6대손인 안드레아스 마인트 툼브로이 오너브루어. 툼브로이 제공

현재 툼브로이가 선보이는 정규 라인업은 모두 4가지. 그중 독일 바이에른 방식으로 만든 페일라거 ‘헬레스’가 대표 메뉴다. 그밖에 독일효모연구소에서 공수해 온 효모로 만든 밀맥주 ‘바이스’, 옛 문헌을 토대로 복원해 낸 희귀 호밀맥주인 ‘로겐’, 독일 프랑켄 지역 스타일의 다크라거 ‘프랑켄 둔켈’ 등이 있다. 계절에 맞춰 다양한 시즈널 라인업도 선보인다. 바이스는 한때 효모 질이 기대에 못 미쳐 중단했다 최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술맛을 향한 브루어의 집념이 엿보인다.

안드레아스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와서 독일 맥주를 마셔 봤는데, 맛이 아예 다르거나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며 “독일 남부 바이에른 현지의 맥주 맛을 그대로 보존해 한국에 소개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툼브로이는 양조장 2층에 브루펍을 함께 운영한다. 맥주와 함께 곁들일 음식도 안드레아스 어머니 손맛의 현지식이어서 궁합에 맞다. 유럽식 돈가스인 ‘슈니첼’은 헬레스·바이스, 독일의 국민간식 ‘커리부어스트’는 로겐·둔켈과 좀 더 어울린다.

툼브로이 브루펍은 독일 가정집을 닮은 인테리어에다 구석구석 볼거리도 많다. 뮐도르프 현지 양조장 사진과 간판, 마을의 상징물이자 툼브로이(탑양조장) 이름의 유래인 시계탑도 만나 볼 수 있다. 브루펍 맨 안쪽 자리는 바 형태로, 벽면이 통유리창이다. 창 아래로 1층 양조장 시설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맥주 맛을 ‘보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툼브로이는 최근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 매장 ‘주든’을 새로 열었다. 2030세대를 위한 좀 더 젊은 감각의 브루펍이다.

독일 남부 소도시 뮐도로프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툼브로이’(탑양조장) 이름은 이 탑에서 유래했다. 툼브로이 제공 독일 남부 소도시 뮐도로프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툼브로이’(탑양조장) 이름은 이 탑에서 유래했다. 툼브로이 제공
독일 남부 소도시 뮐도로프에 있는 툼브로이 양조장의 설비. 현재 가동은 중단됐지만 옛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툼브로이 제공 독일 남부 소도시 뮐도로프에 있는 툼브로이 양조장의 설비. 현재 가동은 중단됐지만 옛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툼브로이 제공

부산 바다만큼 유명한 부산표 수제맥주

부산지역 수제맥주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 많다. ‘허심청브로이’와 ‘부산맥주’는 하우스 맥주 시절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1세대 브루어리다. 허심청브로이는 현재 리모델링 중인데, 대신 농심호텔 앞 정원 ‘비어가든’과 메가마트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부산맥주의 라인업은 동래구 ‘리치브로이’, 해운대구 ‘달바당’, 부산진구 ‘테이블세터 전포’ 등지에서 맛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세운 ‘갈매기브루잉’과 ‘고릴라브루잉’은 부산에서 본격적인 수제맥주 시대를 열었다. 광안리·해운대 등지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수영구 망미동 F1963에 위치한 ‘프라하993’은 993년 프라하 브제프노프 수도원에서 처음 시작된 체코의 정통 맥주를 선보인다.

프랜차이즈 기업에 인수되면서 이름을 바꿔 단 ‘부산 프라이드 브루어리’는 퍼지네이블·까사부사노 매장을 통해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됐다. 부산대 앞 ‘컬러드’, 서면 ‘와일드캣브루잉’도 젊은 감각의 브루펍으로 입소문이 났다. ‘테트라포드 브루잉’, ‘오시게크래프트’는 자체 양조장 없이 외부에 위탁 생산하는 ‘집시 브루어리’로, 브루펍만 운영한다.

다양한 이들 부산표 수제맥주를 한자리서 만나고 싶다면 북구 구포역 인근 ‘밀당브로이’를 추천한다. 현재 갈매기브루잉을 비롯해 6곳의 수제맥주를 판매 중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북구 구포동 ‘밀당브로이’에서 만날 수 있는 부산지역 수제맥주들. 북구 구포동 ‘밀당브로이’에서 만날 수 있는 부산지역 수제맥주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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