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소년은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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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화란’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화란’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방문을 여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벌벌 떨리는 소년.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몸이 멍투성이인 소년. 새아버지가 데려온 여동생이 있을 땐 그나마 덜 맞아서 좋다는 소년. 남편의 폭력에 침묵하는 엄마를 원망할 법도 한데, 소년은 끔찍한 집에서 엄마를 빼내는 게 유일한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 벌기는 쉽지 않고, 꿈은 점점 멀어질 뿐이다. 연규는 슬프고 화도 나지만 그것마저도 사치라는 듯 감정을 잃어 간다. 그의 나이 겨우 18살이다.

김창훈 감독의 ‘화란’은 누아르 영화답게 어둡고 우울하다. 마치 불행의 끝으로 인물들을 몰아가고 있는 듯 폭주한다. 그 끝에 바로 ‘연규’가 있다. 연규는 희망도 미래도 가질 수 없는 동네인 명안시에서 태어나 한 번도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열성인 것은 돈을 버는 일이다. 새아버지 눈을 피해 돈을 모으는 이유는 엄마와 함께 네덜란드로 떠나기 위해서다. 연규가 알아본 네덜란드는 모두가 똑같이 평등한 나라,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화란은 네덜란드를 뜻하는 한자어(和蘭)이자 재앙과 난리라는 뜻(禍亂)도 지니고 있다. 이중의 의미를 지닌 이름은 연규가 희망이 아닌 난리와 재앙을 맞게 될 것임을 예상케 해서 씁쓸하다.

김창훈 감독 누아르 영화 ‘화란’

폭력에 노출된 소년이 주인공

굴레에서 벗어나 떠나는 이야기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


영화 오프닝은 연규가 학교 운동장에서 누군가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 폭력이 의붓 여동생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에도 연규는 합의금을 구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만 보니 연규는 집에서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학교에서는 보호해 주는 이가 없다. 이때 ‘치건’이 아무런 조건 없이 합의금을 건네주자 연규는 의심부터 한다. 그 누구도 그에게 선뜻 호의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건은 폭력조직 중간 보스로 오토바이를 훔쳐 되파는 사채업을 하고 있다. 평소에 일말의 양심도 없어 보이는 그이지만 연규에게는 다르다. 연규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형이라고 부르라며 미소 짓는다.

치건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연규에게서 확인한다. 치건도 줄곧 명안시에서 자랐으며 가정폭력으로 범죄의 길로 들어섰고, 이제는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는 남자다. 그러고 보니 치건도 연규처럼 희망 따위 가질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치건이 연규와 다른 게 있다면 현실의 끔찍함을 잘 알기에 양심도 아픔도 없어졌단 점이다. 그런 그가 연규를 만나며 잃어버렸던 시절을 기억하게 된다. 치건이 연규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봤다면, 연규는 치건에게 아버지의 정을 느끼며 보호받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뒤틀리고 폭력적인 환경에 놓였던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치건을 만났음에도 연규의 불행한 사연들은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사채 사기, 살인과 배신 등 비정한 세계와 폭력은 여전하다. 소년은 그곳에서 혼자다. 누군가를 믿었지만, 누군가는 지켜주고 싶었지만 잔혹한 세계는 소년이 무언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짓눌리기 바쁘다. 감정을 잃은 소년은 이제 ‘악’만 남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든다.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자라지 못한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그를 자랄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벗어날 수 없는 치건과 떠나는 연규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이 결말은 주어진 상황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택한 수동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연규의 마지막은 의미 있다. 복수할 수 있었던 순간에 폭력으로 응징하지 않고, 명안시를 떠나는 그의 선택은 어딘가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영화 ‘화란’은 희망을 꿈꾸는 소년의 성장을 방해하는 건 도대체 누구인지 아프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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