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하나의 모습일 수 없는 우리도 '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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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이정홍 감독 영화 ‘괴인’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연출 특징
주요 배역 비전문 배우로 구성
상황마다 달라지는 인물 모습 그려

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두려워 내가 먼저 선수를 친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대하고, 당장 일거리가 없어 걱정이지만 친구에게 돈 좀 버는 척 온갖 허세를 떨어본다. 딱 보아도 별로 다가서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다. 그런데 또 이 사람 임산부에게는 먼저 계산하라고 양보할 줄 알며,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범인의 딱한 사정을 안 후 수리비를 받지 않는 선의도 베푼다. 남자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때쯤 생각한다. 나에게도 내가 모르는 얼굴이 있는 것을 말이다. 어느 때는 친절하지만, 마음이 뒤틀리는 때는 한없이 심사가 꼬여 모든 일에 무관심해지는 등의 그런 모습 말이다. 그런데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그와 나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이정홍 감독의 ‘괴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다. ‘괴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영화 속 인물도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영화 자체도 정의를 내릴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연출을 자랑한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으며, 의도적으로 서사를 뚝뚝 끊는 편집까지 꽤 긴 러닝타임임에도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연출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이상야릇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기홍은 목수다. 자기 말로 하면 노가다 중 그나마 엘리트인 인테리어 목수지만 지금 하는 피아노학원 공사가 끝나면 백수로 돌아가 일감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도 그는 선불을 요구하는 나이 많은 선배에게 쌍욕을 하고, 싼 자재로 대충 공사를 마감해도 아무도 모른다며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되레 큰소리친다. 노가다 판은 다 그렇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사를 의뢰한 피아노학원 선생에게 반말에 무례한 부탁까지 하더니, 지분거리는 문자까지 보낸다. 이런 진상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기홍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생각만큼 일감은 늘지 않고 그 사이 처세술만 배운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기홍은 자신의 자동차 지붕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한다. 기억을 곱씹다가 공사 현장이었던 학원 근처에 주차해 놓았을 때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기홍은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 남자 ‘정환’과 함께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에서 기홍만 괴인(怪人)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환은 집주인이라는 이유로 기홍의 사적인 공간에 불쑥 등장하며 술을 권하거나 밥을 같이 먹자는 둥 친절을 베풀지만 과해서 불편하다. 정환의 아내인 ‘현정’은 기홍에게 무심한 듯 굴지만 동생처럼 챙겨주는 게 영 이상하다. 게다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하나’는 누군가의 공간에 무단침입해 잠을 청하는 인물로 역시나 특이하다. 기홍을 포함한 이들은 모두 친숙한 얼굴로 누군가의 삶에 불쑥 침범하는 것이 묘하게 닮아있다. 영어 제목을 ‘a Wild Roomer’라고 정한 이유가 이해 간다.

‘괴인’은 어떤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인물들과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린다. 또한 우리는 어떤 사람과 만나고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밀도 있게 추적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와 상황에 따라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행동과 태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가족과 있을 때 기홍은 무뚝뚝한 아들이다. 친구들과 있을 때, 일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기홍은 모두 다른 모습이다. 괴인처럼 보였던 기홍이 왠지 익숙해 보이는 순간이다.

‘괴인’에서 놀라운 점은 기홍의 친구인 ‘경준’ 역할을 제외하고 연기 경험이 전무한 비전문 배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기홍은 감독의 삼십년지기인데 영화 속 설정처럼 진짜 목수로 감독을 위해 연기에 도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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