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N잡러 60만 명 시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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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과 삶이 일치하는 이상적 경지를 천직으로 일컫는다. 전직보다 현직, 현직보다 천직이라는 말도 있다. 누구에게나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직업으로 이어질 때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밥벌이가 곧 천직인 것이다. 천직은 영어 vocation에서 유래한 말인데 라틴어 vocare(부르다)가 어원이다.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은 종교적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동양 문화권에서 이를 한자어로 번역해 하늘에서 내려 준 직업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천직(天職)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철밥통’이라 여겼던 정규직도 구조조정이 되는 현실 앞에 평생직장 개념도 흔들리게 됐다. 더 이상 자신의 직장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평생을 바쳐 일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시기 구직 시장에 나왔던 MZ세대의 직업의식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직 문화에 동화되기보다 자신의 개인적 전문성을 쌓고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언제든 움직인다. 사람의 수명보다 회사의 수명이 짧아지는 시대니 구조적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성립하기도 어렵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N잡러’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붕어빵을 굽고 아예 파트타임이나 프로젝트 형식으로 여러 기업에서 동시에 일하거나 여러 플랫폼을 돌며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하는 등이다. N잡러를 위한 자기 계발서들이 줄을 잇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N잡러를 위한 연말정산 방법 등 다양한 정보가 넘쳐난다.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의 재택근무 확산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플랫폼 발전은 N잡러 열풍을 부추겼다.

올해 들어 N잡러가 60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11월 기준 본업 외 부업을 하는 근로자는 62만 5000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7.6%나 늘어난 수치다. 2020~2022년 연간 부업자 증가율이 3~5%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증가 추세가 가팔라진 것이다. 올해는 고물가에 가계 이자 비용이 급증하면서 더 많이 벌어야 이전만큼 살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부캐와 겹치기 직업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라지만 올해 N잡러 사상 최대치 경신은 유독 먹고 살기 힘들었던 한 해의 그림자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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