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AI 기상도 보여주는 CES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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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끝나고 AI혁명 1년 지나
각국 시선집중 속 한국기업 선전

기기 탑재 ‘온디바이스 AI’ 봇물
후발주자들 sLLM 개발도 러시
과거 소형 핵 개발 경쟁과 유사
통제 가능성 진지한 논의 필요

‘All Together, All One.’

9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4’의 슬로건입니다. 주관 단체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 슬로건에 대해 “모든 기술과 산업이 힘을 모아 세계가 직면한 큰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소개합니다. CES는 익히 알려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입니다. 특히 올해는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호각지세를 보이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분위기입니다. 참가 기업 수로 보면 미국(1201개)과 중국(1115개)이 비슷하고, 그다음이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한 한국(784개)입니다. 더 뿌듯한 소식은 지난 7일까지 CTA로부터 ‘CES 2024 혁신상’ 수상 대상으로 선정된 313개 기업 379개 제품 가운데 한국이 기업은 42.8%(134개), 제품은 41.7%(158개)나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 벤처·창업기업이 116곳이나 된다고 하니 더욱 반갑습니다. 부산시도 올해 처음으로 행사장 내에 ‘부산관’을 열어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인 에코델타시티를 알리고, 지역 강소기업들도 다수 참여해 기술 홍보와 동향 파악에 나선다고 합니다.

올해 CES의 화두는 모두의 예상대로 인공지능(AI)입니다. ‘오픈AI’의 챗GPT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AI혁명 원년’ 2023년을 지나며 관련 업계는 자신들의 제품에 AI를 녹여 넣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번 CES에서는 AI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나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 탑재한 AI시스템을 이용하는 ‘온디바이스 AI’가 대거 선보인다고 합니다. 다음 주 삼성전자가 갤럭시S24에 온디바이스 AI를 세계 최초로 장착해 출시한다니, 일상과 AI의 접점은 비약적으로 넓어질 전망입니다.

챗GPT의 파괴력은 일반 시민이 일상적인 대화로 AI의 유용성을 경험하게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AI가 실험실 바깥으로 나온 데에는 인간이 구사하는 자연어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학습한 초거대언어모델(LLM) 등장이 있었고,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지금도 엄청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챗GPT 3.5의 매개변수(파라미터) 수가 1750억 개였는데, 1년도 되지 않아 내놓은 4.0 버전에서는 10배인 1조 7000억 개에 이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합니다.

기술 수준도 수준이지만, 규모의 경제를 따라잡기 어려운 후발 주자들이 택한 전략은 특정 분야에 특화한 AI입니다. 의료, 법률, 주식 등 특정 분야에 한정된 정보만 충분히 학습시켜 해당 분야에서는 충분히 전문적인 조언을 내놓고, 투자 비용은 훨씬 절감할 수 있는 소규모언어모델(sLLM) 방식입니다. 국내 업계에서도 작게는 60억 개의 파라미터부터 학습시키는 sLLM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각국에서 소규모 핵 개발에 나섰던 상황과 sLLM 개발 열풍이 비슷하다고 지적합니다. 적정 수준만 투자해, 옮기기 쉽고 관리하기도 편한 소형 핵무기를 만드는 경쟁이 일어났던 일과 sLLM 개발 경쟁이 닮았다는 겁니다.

물리학과 전쟁의 기묘한 인연으로 태어난 핵무기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며 방향을 돌린 것이 발전산업이었습니다. 에너지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 번 불붙으면 무엇으로도 끌 수 없고, 폐기물을 영원히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도 찾지 못한 것이 핵입니다. AI도 결국, 그 기술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인류의 편리와 이익을 넘어 너무 급속히 발전하는 AI 기술이 일자리에서부터 인간을 대체하고, 언젠가는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무리는 아닙니다. 기술 공유를 모토로 출범한 오픈AI를 이끄는 CEO 자리에서 해고됐다 돌아온 샘 올트먼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일반인공지능(AGI) 개발을 목표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올해 내놓을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AI가 인간과 같거나 그 수준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미래학자 커즈와일의 예상인 2045년보다 20년 이상 빨라지는 셈입니다. CES만큼이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기술, 인류의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기술의 역할에 관한 진지한 공론을 모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꼭 1년 전 미국핵과학자회보는 ‘지구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까지 90초밖에 남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 화약고에도 불이 붙은 올해는 남은 시간이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올해 CES 슬로건처럼 지구가 닥친 위기 앞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머리를 맞댈 기회는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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