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걷기 좋은 부산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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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간혹 어떤 교차로를 건널 때에 숨이 가쁘다. 가로등 신호가 허용하는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대체로 건널목의 신호는 1초에 1.2m를 걷는 성인의 보폭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십자 교차로나 교행(交行) 육차선이 넘는 곳은 약 30초를 부여한다. 이보다 작은 도로는 20초 정도에 그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노인층이 많아진 사정을 고려할 때, 건널목을 건너는 시간을 다시 조정해야 할 요인이 충분하다. 순전히 60대 중반인 나의 경험적 판단이긴 하다. 그러함에도 운전하지 않고 우리 도시를 즐겨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한 시민이 거듭 느낀 구체적인 불만이다. 신호등에 쫓기는 일은 간혹 가로수 뿌리가 밀고 올라온 보도블록에 발길이 채일 때 느끼는 통증에 못지않은 모독이다. 과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인가? 도시는 거시적인 시각뿐만 아니라 미시적이고 섬세한 시선을 요구한다.

아직은 보행하기 힘든 요소 많아

더 고도화된 도시 디자인 필요

차 다니지 않는 길 더 많이 만들고

공기 오염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과도하게 규정된 형식서 벗어나

역동성 끌어내야 열린 도시될 수 있어

자동차화(motorization)가 가져다준 편의와 풍요를 모르는 게 아니다. 자동차 산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번영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선진국에 이르게 한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이와 더불어 놓치지 않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그 사회적 비용이다. 교통사고 희생자를 없애야 하고 공기를 오염시키는 매연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보행 공간을 확대하고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기술 혁신으로 공기 오염을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자동차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 도시로 가려면 가로, 보도, 쉼터 등의 보행자 공간을 충실하게 갖추어야 한다. 도심과 비도심을 아울러 부산은 아직 보행 도시라 하기 힘든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국내외에 도시브랜드가 급성장하고 있는 근래의 사정을 고려하여 더 고도화된 도시 디자인이 요긴하다.

부산의 가치를 더 높인 가장 주요한 요인은 아무래도 바닷가 경관에서 찾을 수 있겠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명성이야 말할 필요가 없으나 송도와 다대포의 변신도 놀랍다. 북항 재개발이 진행 중이고 영도와 기장 바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도시를 아는 데 걷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한다. 또한 걷기는 침착함, 편안함, 활력의 회복, 상쾌함의 감정 등을 더하는데, 뇌과학자인 셰인 오마라는 해안가의 자연환경이 가장 많은 활력을 준다고 한다. 이는 시골 전원과 도심의 녹지보다 앞서는 치유의 지표를 보인다. 그러니 350km가 넘는 부산의 연안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걷기 좋은 도시는 역시 도심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바닷가 경관이 아름답고 친수공간이 번듯해도 도심이 무미건조하다면 그 도시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달 말에 철거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해운대 바다마을 포장마차촌을 둘러보았다. 솔밭 끝에 자리한 이 장소는 20여 년이 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유명 배우와 거장 감독이 찾은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탕웨이가 왔고 김동호 위원장이 자리가 없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술잔을 나누었다는 일화도 들었다. 본디 60개의 점포가 30개로 줄었으나 더러 젊은이들이 모여 즐겁게 해산물을 안주 삼아 얘기꽃을 피우고 있어 하나의 섬처럼 고립된 장소지만 흘러나오는 불빛이 정겹기만 하다. 여기서 불과 스물다섯의 나이인 1970년에 쓴 책이라 놀라움을 더하는 리처드 세넷의 〈무질서의 효용〉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도시에 필요한 ‘접촉점’(contact point)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생동하는 도시, 살면서 갖가지 시련과 도전을 적절하게 대처하는 인격을 만들어내는 도시를 위해 창조적인 무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야시장은 열대지역이라 가능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선진국 도시에도 광장과 골목의 가게와 노점이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게 사실이다. 리처드 세넷은 2020년 건축가 파블로 센드라와 협업해 〈무질서의 디자인〉을 썼다. 50년 동안의 일관성에 다시 놀라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그는 현대 도시의 엄격하고 과도하게 규정된 형식을 비판한다. 그는 유연하지 못한 환경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억압하고 비공식적인 사회관계의 숨통이 막히게 하며 도시의 힘이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면서 과도하게 규정된 형식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다이너미즘을 이끌어야 한다. 북항 재개발은 물론이고 도심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에도 본디 부산이 지닌 문화 혼종성과 접촉 지대의 특이성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그럴 때 다양한 계층과 이민자와 이주 노동자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바다로 세계로 열린 도시가 될 수 있겠다. 이러한 내재 가치를 충분한 잠재력으로 지닌 부산인 만큼, 이제 제대로 실천할 일만 남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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