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파업과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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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국 북동부의 한 폐광촌. 한때는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로 활력이 넘쳤지만, 이제는 낡고 허름한 건물들만 남은 이곳에 시리아 난민들이 도착한다. 난민들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자국민의 가난도 구제 못 하는 판에 난민들을 챙겨주는 정부의 태도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난민들과 함께 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한 그들은 서슴지 않고 난민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켄 로치 감독은 적대와 분노,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가장 지위가 낮고 힘없는 사람들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것을 선악이나 약자와 강자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단순화시키지 않는다.

‘TJ’는 ‘올드 오크’라는 펍을 운영하는 남자다. 한때는 폐광을 막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연대해 싸웠지만 시위가 길어지면서 생계가 막막해지자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아들은 떠났다. 자살을 결심한 순간 기적처럼 찾아온 강아지 ‘마라’로 삶의 의지를 되찾지만, 그는 예전처럼 마을을 보살피는 일이나 사람들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 적당히 모른 척 눈감고 살아가던 그때, 사진작가를 꿈꾸는 난민 여성 ‘야라’를 만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탄광 폐쇄로 직장을 잃었던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난민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TJ와 야라의 우정을 통해 풀어나간다.

켄 로치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원주민과 난민의 공존 과정 다뤄

쉬운 혐오 대신 어려운 연대 추구

영화에는 두 번의 죽음이 등장한다. 죽음은 견뎌내기 힘든 슬픔이지만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죽음은 큰 개에게 물려 마라가 죽는 사건이다. 실의에 빠진 TJ를 위로하기 위해 야라가 찾아온다. 언제나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야라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천천히 음식을 먹는 TJ의 얼굴이 점차 평온해지는 것이 보인다. 사실 TJ는 난민을 비난하는 친구들의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펍을 찾는 유일한 단골이었기 때문이다. 생활을 위해 참아왔던 그가 마라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탄광촌을 지키기 위해 시위했던 그때처럼 난민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나선다. 연대를 위한 첫 행동은 올드 오크의 폐쇄된 문을 개방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영화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를 실천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난민들에게만 물건을 주냐고 원망의 눈길을 보내던 아이들이, 내 것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장담하던 어른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아픔을 나눈다. 원주민과 난민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알아간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결국 연대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사고를 치고 만다. 이제 많은 사람이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떠올릴 때, 야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거장 켄 로치는 불평등과 노동계급의 현실,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다루어 온 감독이다. 이번에도 날카로운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진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거나 감상적 또는 교훈적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느린 전개와 영화의 엔딩이 상투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켄 로치는 현실적인 순간을 그리면서도 영화적 이미지를 놓치지 않는다. 현실을 재현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이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실제 폐광을 막으려 시위를 벌였던 광부들의 사용한 구호다. 켄 로치는 실존했던 과거와 현재 상황을 오가며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영화적으로 전한다. 그리고 TJ의 말을 빌려 “어려움 속에서 약자를 비난하는 선택은 가장 손쉬운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정답이 없는 싸움을 그만두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다.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희망으로 읽을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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