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정치인의 민낯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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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중국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위왕이 백성들로부터 계란 2개씩을 거둔 적이 있는 한 장군을 파직시키려 하자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진언하면서 파면을 취소한 일화가 나온다. 자사는 “훌륭한 목수는 아름드리 큰 나무에 썩은 곳 몇 군데가 있다고 하여 나무 전체를 버리는 법이 없다. 이 난세에 계란 두 개 때문에 인재를 버리려 하나”고 말했다.

한국 현대 정치에서도 정치인 검증에 있어 윤리와 도덕 등과 같은 ‘수신’(修身)과 국가 경영 역량인 ‘치국’(治國)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두 가지 모두 최소한의 인품을 갖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 개인의 인품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말이다. 평소 ‘신사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부산의 A 국회의원이 오전 7시 전화를 걸어왔다. 몇 분간 이어진 통화의 골자는 자신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상대 후보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분량은 물론 내용적인 면에서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4년간 치러진 4번의 선거 모두 정치부에서 지낸 만큼 선거가 임박해 조급해진 A 의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는 “〈부산일보〉 경영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러면 가만 안있어요”라고 말했다. 언론계 내에서도 금기시되는 ‘편집권 침해’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으면서 기자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끊고 문자로 해당 발언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속상했다”면서 “균형은 잊지 말길 바란다”였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은 날에도 이러한 황당한 통화는 이어졌다. 늦은 저녁 시간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B 후보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돼 있었다. 기사 중 경선 가능성을 제기한 대목을 문제 삼으며 자신이 전략 혹은 단수 공천 가능성이 있음에도 “무조건 경선이 치러지는 것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이어 ‘균형발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그의 입에서는 “이러면 내가 부산을 왜 오냐” “약속했던 것들 부산에서 안해도 되는가. 나는 수도권으로 가면 된다”라는 말이 나왔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시혜적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B 후보는 오늘도 유권자들에게 부산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두 사람과의 통화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거나 일하게될 보좌진, 직원들 걱정이 앞선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에서도 이같은 말을 하는 데 자신의 아랫사람에게는 어떨까.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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