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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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순 약선요리 만순당 대표 한국전통약선연구소 소장

맛 뛰어나고 영양 풍부한 먹거리
성인병 예방·면역력 강화에 효과

액운 쫓고 복·풍요 기원하며 즐겨
이웃과 나누고 공동체의식 높여

심신 건강 다지고 희망 키우기를

정월대보름에 먹는 오곡밥과 다채로운 나물 반찬. 부산일보DB 정월대보름에 먹는 오곡밥과 다채로운 나물 반찬. 부산일보DB

세상 만물은 시작이 중요하다. 한 해의 출발은 봄이다. 입춘 후 오는 상원(上元)인 정월대보름(올해 2월 24일)은 특별하다. 설날부터 정월대보름 사이에 많은 세시풍속이 몰려있다. 또한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까지는 금기시되는 것을 하지 않고 매사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정초 십이지일(正初 十二支日)도 있다. 올해는 청룡의 해인 만큼 상서로운 용의 기운으로 건강과 풍년을 소망한다. 그리고 첫 용날인 상진일(上辰日·2월 22일)에 약수를 길어다 밥을 지어야겠다. 지금은 물맛 좋은 우물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동네 뒷산 약수터 약수로 대신해 보자.

설날이 가족의 날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마을 공동체의 날이다. 조선 세시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는 정월대보름에 오곡으로 밥을 해 먹으며 이웃과도 나눈다고 했다. 공동체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음식이 같은 생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식사가 어떤 식으로 준비되는가에 따라 인체가 서로 다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정월대보름 풍습으로 백가반(百家飯)이 있다. 어린아이가 동네 백 군데 집을 돌면서 밥을 얻어다 섞어 먹으면 액운을 피하고 복을 받으며 봄을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네를 누비는 과정에서 이웃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 아파트가 즐비한 요즘엔 같은 동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핵가족화가 진행된 지 반세기도 안 돼 1인 가구도 급증했다.

정월대보름날 전국 곳곳에서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갖가지 풍속을 즐긴다. 대표적인 게 마을 공동 제사와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연날리기 등이다. 모두 풍요와 다산을 빌고 단결력을 높이는 공동체의식이 깃든 놀이다. 특히 예부터 정월대보름에 다섯 가지 곡식이 들어간 오곡밥과 묵나물 반찬을 즐겨 먹었다. 오곡밥에는 보통 찹쌀, 멥쌀, 기장, 팥, 쥐눈이콩이 들어간다. 오곡밥은 신진대사를 촉진해 소화가 잘 되게 하며 혈압을 조정해 면역력을 키우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묵나물의 기원은 우리 조상이 채소를 먹기 시작할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묵나물은 제철에 채취해 말려 놓았다가 이듬해 먹는 것으로,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낸 식재료다. 볕에 말리는 나물은 그 성질이 따뜻하게 변한다. 말린 나물은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의 보고다. 말린 나물의 식이섬유는 비만과 변비 등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묵나물이 제맛을 내는 시기가 바로 정월대보름 전후다. 묵나물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박, 버섯, 호박, 무, 무 시래기, 고사리, 취나물, 가지 등을 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나물은 삶아 햇빛에 천천히 말리면 어두운색으로 변한다. 그러면 검은색에 풍부한 색소인 안토시아닌이 생성된다. 안토시아닌은 동맥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 피를 맑게 하고 심장 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줄여준다고 한다. 소염·살균 효과도 뛰어나다.

오곡밥과 묵나물은 색깔이 어둡다는 특징이 있다.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검은색 음식은 겨우내 몸 안에 쌓인 습하고 건조한 기운을 부드럽게 하고 화기를 조절하는 조습연견(燥濕軟堅) 효능이 있다. 그리고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관장하는 색을 의미한다. 또 소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묵나물을 먹는 이유다. 여기에는 행동을 조심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날 단단한 견과류로 부럼 깨물기를 하고 차가운 귀밝이술도 마신다. 액운이나 질병을 막고 좋은 일이 생기기를 원해서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뚜렷해지는 봄의 기운은 추위에 움츠렸던 인체에도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한다. 몸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비타민이 필요하다. 비타민이 부족하면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오며 식욕과 면역력이 떨어진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면서 양기가 점차적으로 많아지는 시기다. 이때 기름기 많은 음식을 적게 섭취해 양기가 몸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체내의 간을 안정시켜 오장육부를 조화롭게 할 수 있다. 오는 24일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나물을 먹으며 심신 건강을 다지고 옅어진 가족애와 공동체의식도 되돌아보면서 삶의 희망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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