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무너지는 주거 사다리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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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부동산팀 기자

오피스텔과 빌라는 죄가 없다. 지난해 전국을 발칵 뒤집은 전세사기 사태는 사기를 치밀하게 계획했거나 대책 없이 무분별한 투기를 일삼았던 일부 파렴치한 임대인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화살이 오피스텔과 빌라 그 자체로 향해선 안 된다. 오피스텔과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은 오랫동안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도맡았다. 아파트 전월세 보증금이 부담스러운 주거 취약계층은 오피스텔이나 빌라 등에서 차곡차곡 목돈을 모으며 ‘상급지’로 옮겼다. 2~3년 전처럼 아파트값이 폭등할 땐 사다리 역할이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정부가 ‘투기꾼을 잡겠다’며 2020년 8월부터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포함하면서 오피스텔의 공급이 급감하고 있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오피스텔에 투자했다간 월세 수익보다 훨씬 많은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할 판이다. 불과 5년 전 11만 실에 달했던 전국 오피스텔 신규 공급은 올해 6900실로 쪼그라들었다.

착공 물량이 줄어든 건설업계 걱정하자는 게 아니다. 수요는 일정한데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상승한다. 월세 위주로 임대되는 오피스텔이나 빌라의 신규 공급이 감소하면 월세와 보증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임대료 증가분은 청년이나 서민 등 주거 취약계층이 오롯이 떠안게 된다.

올해부터 분양이나 착공 물량이 줄어들고 있으니 공급 부족이 현실화되는 2~3년 뒤 월세 상승은 사실상 예견된 상황이다. 벌써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월세가 치솟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임에도 전국 오피스텔 월세가격지수는 8개월째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올 1월 오피스텔 수익률은 5.27%로 2020년 6월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찍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국토부는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소형 신축 오피스텔을 최초 구입할 경우 세제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규제 완화책을 발표했다. 대책이 나온 지 두 달이 다 돼가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오피스텔 공급이 끊긴 상황에서 ‘신축’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놓으니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청년들이 건너갈 징검다리가 끊어지면, 이들이 체감하는 주거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오피스텔과 빌라가 사라지면 결국 고시원이나 쪽방 정도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투기를 조장하지 않는 차원에서 규제부터 풀고, 공급자에게는 한시적으로라도 세제나 금융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전세사기 예방과 감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은 무너져가는 주거 사다리를 다시 이어야 할 때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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