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vs 전문화 유지’ 진주실크전문농공단지 ‘진퇴양난’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단지 내 정상 실크업체는 서너 곳 불과
부도·폐업 후 부지 임대…악용 사례도
유령단지화 우려에 규제 완화 목소리
시 “역효과 우려…활성화 방안 구상”

경남 진주시 실크전문농공단지 전경. 최근 비실크 업체들의 편법 입주를 계기로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김현우 기자 경남 진주시 실크전문농공단지 전경. 최근 비실크 업체들의 편법 입주를 계기로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김현우 기자

최근 경남 진주시 실크전문농공단지에 비실크 업체들이 편법 입주해 퇴거 조치된 가운데(부산일보 2월 15일자 11면 보도) 실크전문단지의 근본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지 활성화가 우선이라며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실크산업 보호를 위해 특화단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4일 진주시에 따르면 진주실크전문농공단지는 지난 2010년 3월 문산읍 삼곡리 일원에 13만 2800여㎡ 부지 규모로 조성됐다. 총 23개 필지로 나눠졌으며, 이 가운데 공장 부지가 20개를 차지했다. 또 2개는 기관 부지로 한국실크연구원과 경남직물협동조합이 들어섰으며, 남은 1개는 지원시설인 실크박물관 예정 부지로 남았다.

조성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당시 시는 노후산단에 흩어져 있던 실크업체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진주실크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 실크단지 조성 전에 이미 14개 기업이 분양을 완료했고 나머지 부지 역시 많은 기업에서 관심을 보여 실크산업 활성화의 기대감을 키웠다.

진주 실크 원단 모습. 진주시는 노후산단에 흩어져 있던 실크업체들을 모아 산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실크전문농공단지를 조성했다. 김현우 기자 진주 실크 원단 모습. 진주시는 노후산단에 흩어져 있던 실크업체들을 모아 산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실크전문농공단지를 조성했다. 김현우 기자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10여 년만에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앞서 분양을 받았던 실크업체 상당수는 폐업했고, 부도로 인해 부지가 경매로 넘어간 곳도 있다.

20개 공장 부지 가운데 실크공장이 들어서 있는 곳은 8곳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2곳은 현재 임대로 들어와 있는 상태다. 또 2곳은 자체 운영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해 부지 일부를 임대로 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2개 부지는 부직포 공장이 들어서 있거나 창고로 쓰고 있으며, 아예 비어 있는 공장도 있다. 빚은 늘고 공장을 팔지도 못하다 보니 업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임대를 내주고 있는데, 지난해 비전문 실크업체의 편법 입주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실크업체 대표는 “답답하다. 처음에 입주할 때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사람이 다니질 않는데 어떻게 외부에서 사람이 오겠나.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야 전국 각지의 섬유관계자들이 올 텐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이러다 유령단지가 될까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크산업이 침체를 겪으면서 실크단지 내 공장 상당수가 폐업하거나 창고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업주들은 어쩔 수 없이 공장을 임대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크산업이 침체를 겪으면서 실크단지 내 공장 상당수가 폐업하거나 창고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업주들은 어쩔 수 없이 공장을 임대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크단지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실크업계 전반의 침체 탓이다. 원사 가격과 인건비 폭등, 값싼 화학섬유 대체 등으로 인해 공장 가동률이 뚝 떨어졌고, 수익이 없어 신제품 개발에 나서질 못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조성 당시 50개가 넘었던 지역 실크업체는 현재 30개 안팎으로 줄었고 그나마도 대다수가 현상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크단지가 다시 활성화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실크단지는 오직 실크 관련 업종만 입주할 수 있다. 조성 당시에는 아예 실크 섬유와 의복만 가능했는데, 침체가 길어지면서 지난 2019년 실크 관련 식료품과 음료, 화학물질, 의료물질 등까지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사실상 바이오산업과의 융복합을 허용한 건데, 그럼에도 실크업계가 워낙 불황이다 보니 좀처럼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모든 실크업체가 문을 닫기 전에 실크단지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역 등을 통해 보다 현실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인근 바이오전문농공단지와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현 진주 순실크 대표는 “실크단지 공동화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바이오산업과 융복합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기업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5년 뒤에는 실크업체 대부분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든 복합단지화든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진주실크전문농공단지에 들어설 예정인 실크박물관 조감도. 시는 유동인구가 늘면 실크산단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주시 제공 내년 진주실크전문농공단지에 들어설 예정인 실크박물관 조감도. 시는 유동인구가 늘면 실크산단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주시 제공

진주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실크연구원과 실크혁신지원센터 등을 통해 연간 35억 원의 실크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특화단지가 사라지면 지원 여부가 불투명해 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실크단지를 실크와 무관한 업종까지 확대할 경우 대부분의 실크업체가 부지를 팔고 나가는 등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강성윤 진주시 산단관리팀장은 “업종 규제를 풀면 공장부지 매매가 상승으로 앞으로 실크업체가 들어오려고 해도 진입장벽이 높아 입주를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일단은 내년에 실크박물관이 들어서며 단지 내 가로환경도 개선할 예정이다. 실크단지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