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수술·진료 차질 심각… 애먼 환자만 ‘생고생’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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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 병원 레지던트 90% 이탈
전임의·교수까지 사직 움직임 확대
부산대 전임의 27명 중 22명 떠나

정부는 행정처분 강경대응 재강조
3401명 증원 요청도 논란 불가피
의료공백 장기화 피해 눈덩이 우려

5일 전국 40개 의대가 정원을 3401명 더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의대생 휴학 여파로 개강 이틀째인 5일 경남 양산시 부산대 의과대학이 한산한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 앞에서 한국중소자영업총연합회를 비롯한 자영업 단체가 의협 규탄과 전공의 근무지 복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종진 기자 kjj1761@·연합뉴스 5일 전국 40개 의대가 정원을 3401명 더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의대생 휴학 여파로 개강 이틀째인 5일 경남 양산시 부산대 의과대학이 한산한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 앞에서 한국중소자영업총연합회를 비롯한 자영업 단체가 의협 규탄과 전공의 근무지 복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종진 기자 kjj1761@·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수술에 이어 진료 차질까지 빚어지며 환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면허정지 최소 3개월이라는 강력 대응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 교수까지 사직 움직임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의료 대란’ 국면이 사실상 장기화 수순으로 가면서 의료진 피로도와 환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

■레지던트 90%가 이탈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4일 오후 8시 기준 전국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신규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1~4년 차 9970명 중 약 90%에 해당하는 8983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5일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전날 전공의 행정처분을 위해 50개 수련병원을 현장 점검했고, 나머지 50개 병원으로부터 서면 보고를 받은 결과다.

정부는 5일부터 복귀가 확인되지 않은 전공의를 대상으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 발송을 시작한다. 행정처분은 사전통지서 발송, 의견 진술을 거친다. 지난달 29일 기준 전공의 7854명이 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다. 중수본 김국일 비상대응반장은 “4일 전공의 수 상위 1위부터 50위까지 현장점검 결과 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은 전공의 규모가 7000명을 넘는다”면서 “행정력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선적으로 통지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남은 상위 100개 중 남은 50개 병원은 복지부가 현장 점검하고, 나머지 수련병원은 지자체가 점검해 똑같은 절차를 거친다.

정부는 강경 대응을 또다시 강조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어떤 경우에도 의료를 포기할 수 없고, 의료법은 관련 규정과 절차를 모두 구비해 놓고 있다”며 “(의료인들이)복귀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의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 40개 대학이 모두 3401명이나 의대 정원 증원을 요청한 일도 향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사 집단의 반발이 전공의에서 의대생으로, 전임의와 교수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각 대학이 의대 교수들 요구와 달리 대규모 증원을 요청하면서 향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29일 부산대병원 의대 교수협의회, 부산대병원 교수회, 양산부산대병원 교수회는 공동 성명에서 “정원 수요 재조사가 정부의 의대 정원 증가 자료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전임의 이탈에 교수 사직도

전공의 부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대학병원은 명목상은 계약 만료지만 사실상 항의의 의미로 병원을 떠난 전임의의 공백까지 떠안게 됐다.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로 이제 수술 연기에 더해 외래 진료 취소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만간 부산대병원 피부과 진료를 앞둔 예약 환자 A 씨는 “갑자기 ‘교수의 개인 사정으로 3월부터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진료 변경이나 취소를 도와주겠다’는 문자를 받고 병원에 전화했더니 환자 연락이 속출하는지 오전 내내 전화가 불통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대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피부과 전임의는 이달 1일 ‘진료교수’ 임용을 앞두고 돌연 사직을 택했다. 이 전임의는 지난해 5월 1일 근무를 시작해 지난달 29일 계약이 만료됐다. 진료교수는 일주일에 오전·오후 통틀어 3~4 타임(약 이틀) 정도 외래 환자를 진료한다.

진료교수를 보조하던 전임의 이탈 사태로 손이 부족해지자 진료교수가 과중한 업무를 떠맡을 것이 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사직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대병원 한 교수는 “진료교수는 병원의 필요에 따라 1~2년 일시적으로 채용하는데,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전공의 파업 사태를 만나면서 그 기간 동안 고생만 할 것이 뻔하다는 인식에 다른 병원이나 개원가로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은 이달 1일부터 출근이 예정돼 있었던 전임의 27명 가운데 22명이 임용을 포기했다. 일선 대학병원 교수들도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사직하는 사례가 나왔다. 지난 4일 경북대 의대 윤우성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SNS를 통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윤 교수는 “현 의료 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와 기성세대 의사들이 욕먹어야 할 것을 병원 내에서 누구보다 고생하고 있는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는 답답한 상황에서 저는 제 위치에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없다”고 썼다.

5일 강원대 의대 교수들은 대학본부 측의 의대 정원 신청에 반발하며 강원대 의과대학 앞에서 삭발식을 감행했다. 이들은 “의대 증원 신청에 대해 교수들이 77%가량 유보해야 된다고 결의해 총장에게 전달했지만 의대 교수들의 뜻과 전혀 무관하게 교육부에 증원 신청을 했다”며 “젊은 전공의나 휴학계를 낸 학생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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