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중립국의 명운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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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살벌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진영에 가담하지 않은 채 등거리 외교를 유지했다. 독일에 군수용 철광석과 트럭을 수출하고 병사 휴양 서비스를 팔았다. 반면 1943년 나치 수용소에 보내질 예정이던 유대인 7000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나치와의 무역과 인도주의 실천의 병립은 국제 사회에서 공인된 중립국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스웨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입장을 바꿔 안보를 선택했다. 5일 헝가리를 끝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체 회원국의 동의 절차를 마쳐 200년간의 중립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유럽에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중간 지대가 많았다. 스웨덴에 앞서 핀란드가 중립국을 포기하고 군사 동맹인 나토에 가입하면서 중립 외교는 위축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에 속한 27개 회원국 중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중립국은 스위스,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정도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도 나토 가입에 33%, 나토 협력에 56%가 찬성할 정도로 여론이 바뀌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국방력이 중립국 위상을 지켜준다는 인식의 전환에서 국방 예산을 19%나 늘리고 대대적인 군비 확장에 들어갔다.

유럽의 안보 지형을 바꿔 놓은 장본인은 러시아다. 나토 가입을 막으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게 되레 나토의 반경을 넓히는 부메랑이 됐다. 러시아는 휴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영구적 중립국화를 요구한다. 나토와 완충 지대를 두려는 속셈인데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까닭이 없다. 나토 역시 셈법이 복잡하니 장기전으로 치닫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국운이 혼란스러웠던 시기 거론된 한반도 중립국론이 겹친다.

‘중립국이… 우리나라를 지키는 방책인데… 영국·프랑스·일본·러시아와… 중립 조약을 체결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미국 유학생 출신 유길준이 1885년 쓴 ‘조선 중립론’이다. 19년이나 지난 1904년에 고종은 실제 중립을 선언했지만 국력이 쇠퇴해진 상태여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한국전쟁 중 미 국무부도 ‘한반도 영구 중립화’를 검토했다가 폐기한 적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중립국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 논문 주제가 중립국이었는데,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중립이 아닌 한미동맹을 선택했다.

목하 중립이 설 곳이 줄고 안보가 대세가 되는 시대다. 자위력을 갖추지 않은 중립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외세에 강요된 중립은 무참한 노릇이다. 냉엄한 국제 질서가 주는 교훈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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