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모르는 남인도 인문학 이야기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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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금항아리 / 변영미

아시아 전통극 찾아 인도행
천생연분 만나 20여 년 거주
“따뜻한 남인도 인식되기를”


말리던 열대작물 에라커넛 위에 누워 있는 남인도 사람들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스럽게 느껴진다. 변영미 제공 말리던 열대작물 에라커넛 위에 누워 있는 남인도 사람들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스럽게 느껴진다. 변영미 제공

인도를 다녀온 소감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향을 보인다. ‘너무 좋다’와 ‘싫어 죽겠다’라는 식이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도 인도 여행이 들어 있다. 남인도가 그렇게 좋다고 아내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인도에서 여성 관광객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올라오다니…. <숨겨둔 금항아리>에는 남인도 께랄라에 처음 간 한국인이 숙소에서 사색이 되어 뛰쳐나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작은 악어들이 나타났어요!” 도마뱀을 보고 악어라고 떠들었으니 도마뱀 입장에서도 적잖이 놀랐을 것 같다. 우리는 볼 기회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갓 태어난 도마뱀은 잔멸치처럼 작고 귀엽다고 한다.

이 책에는 ‘남인도 인문학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연극을 전공한 저자는 아시아 전통극에 끌려 인도행을 감행한 뒤 그곳에서 천생연분을 만났다. 그렇게 20년 넘게 남인도 께랄라주에 살면서 한국을 오가고 있다. 먼저 북인도를 여행하고 께랄라를 찾은 사람은 코코넛이 펼쳐진 열대우림의 초록을 보며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색다른 풍광에 놀란다고 한다. 께랄라에는 소두구, 후추, 계피, 생강, 강황이 풍부하게 자란다. 고산지대에는 차와 커피가 재배된다. 향신료의 나라, 향기의 천국인 셈이다. 께랄라는 공산당이 유혈혁명 없이 선거를 통해 세계 최초로 집권한 곳이다. 시위와 파업이 잦다니 불편한 점도 있겠다.

남인도에 가 보고 싶은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나, 니,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머리, 이거, 날, 어느, 둘, 당신, 와, 뱀, 어부바, 반갑다, 아가씨….’ 이 단어들이 모두 발음과 의미가 우리와 같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도 “밥 먹었어?”가 인사이고, 오랜만에 만나면 가족들 안부까지 묻는다. 우리와 어떤 오랜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동물복지도 잘 되어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공립동물병원이 있고 거기서 거의 무료로 가축들을 치료한다. 길강아지 때깔도 좋은 편이라니 항공 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게 된다.

이 책은 2016년 <부산일보>에 ‘장구 메고 떠난 남인도 문화기행’에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해서 출간됐다. 제목에 장구가 들어간 이유는 한국에서 풍물굿과 한국 춤을 가르치는 언니와 저자가 동행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장구가 인도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인도의 장단은 어떠하고, 우리 가락이 인도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 궁금해서 떠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너무도 닮은 인도 장구의 모습을 보니 역시 신기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인도를 모른다. 16분마다 한 번씩 성폭행이 일어난다는 ‘카더라 통신’이 인도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긴다. 하지만 남인도 께랄라에서는 죄질이 나쁜 성범죄는 공개적으로 이슈화하고, 이후에 범죄자는 극형에 처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숨죽여 지내고 가해자들이 떵떵거리는 곳이 더 문제가 아닐까. 인도에서 여성 문제는 복잡한 양상으로 존재하고 많은 경우 상반하는 경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유머가 넘치고 재밌게 읽히지만 가벼운 여행 에세이는 아니다. 인도 전통 무용극 ‘카타칼리’ 수련에 정진한 사람답게 카타칼리부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 ‘꾸디야땀’, 시바신이 전수했다는 무술 ‘칼라리 파야트’까지 전통문화 예술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 놓았다. 전시회를 열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빼곡하게 수록된 아름다운 사진들도 볼 만하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사파리부터 전통방식 하우스보트에서의 하룻밤까지 모두 경험해 보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장면은 저자가 ‘살아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같다고 표현한 대목이었다. 우기가 끝날 무렵 나무에 반딧불이가 수천 마리가 내려앉아 동시에 빛으로 노래하는 모습, 은하수가 흐르는 우주의 중심에 떠 있는 것 같단다.

저자는 불합리하고 불편한 구석이 많은 인도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방인을 가족처럼 대하는 친절함과 따뜻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른 것은 틀렸다고 내모는 각박한 분위기다. 어떤 마음으로 서로 다름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아 남인도 께랄라 여행을 꿈꾼다. 변영미 지음/연극과인간/432쪽/2만 4000원.



<숨겨둔 금항아리> 표지. <숨겨둔 금항아리>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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