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읽기] “보이는 것이 전부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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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 / 오후

<보여주기> 표지. <보여주기> 표지.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백화점 1층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고고하게 손님을 맞는 ‘명품’은 우리와 어떻게 친해지게 됐을까. 책 <보여주기>의 저자는 명품에 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인 ‘부모덕’이라고 소개한다. 1995년 루이비통 코리아에서 근무하던 홍보 담당 직원은 해외에서 사용하던 ‘럭셔리(luxury)’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럭셔리를 직역하면 사치품이 되는데, 이 직원은 차마 자신이 몸담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치품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라는 뜻의 명품(名品)이다. 작명 한 번에 부자들의 사치수단이 장인이 만든 훌륭한 제품으로 변신했다.

SNS가 일상화되면서 자신을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 됐다. 충남에 위치한 건축 자재업체 ‘온양석산’은 인스타그램에서 돌을 판매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끌어 3만 3000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서울의 한 꽃집은 가게 주인과 손님이 함께 춤을 추는 릴스 영상이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겨 ‘춤추는 꽃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만듦새 좋은 노출 전략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보여주기>의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 ‘노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일본보다 조건이 열악했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88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는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기 집권을 위해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등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이미지 하나로 사람의 인생이, 국가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는 그의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메시지도 메시지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에 더욱 놀란다. 역사를 그저 나열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더하고 덜어내 몰입감을 높였다. 계속 ‘보여주기’를 말하고 있자니 문득 거울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지음/생각의힘/280쪽/1만 9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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