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운' 하기 어려운 나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성준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대학원 해양역사문화전공 교수

우리나라 해운산업 세계 4위 성장
목표 달성 적극적 육성책 밑거름돼
담합 과징금 부과·톤세 종료 앞둬
이젠 해수부 존재 가치 입증할 때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99.7%를 해상으로 운송하고 있는데, 전략물자인 원유, 가스, 석탄, 철광석은 100% 해상으로 운송된다. 이들 물자 중 원유의 50%, LNG의 48%, 철광석의 65%, 석탄의 94%를 우리 해운기업이 운송한다. 2022년 우리 해운기업 170개 사가 1665척, 992만 2000중량톤의 외항 선박을 보유해 세계 4위(중량톤 기준)에 올라서며 운임수입 38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우리나라 국제수지 중 서비스 부분 외화가득액 1302억 달러의 29%에 해당한다. 품목별 수출실적에서는 6대 산업인 철강 제품 수출액(384억)에 맞먹는 규모다. 2000~2004년 우리 해운기업이 세계 8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이렇게 해운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해양수산부가 ‘해운산업중장기발전계획’(2000년 5월)과 ‘해운수산발전기본계획(Ocean Korea 21, 2001년 6월)’을 법정계획으로 공포하고, 2030년까지 ‘해운 5대 강국’을 이루겠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운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데 따른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해운 하기 좋은 나라’를 기치로 내걸고 제주선박등록제도(2002), 선박투자회사(2002), 선박 톤세제(2004), 해양진흥공사(2018), 국가필수해운제도(2019) 등을 차례로 도입했다. 외항 상선 한 척을 확보할 경우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의 초기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 중 80~90%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뒤에 배를 운항해 번 돈으로 10~12년 동안 갚아나가는 것이 관례다. 또한 해운산업은 화물의 운송권을 놓고 전 세계 해운회사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완전경쟁에 노출된 거의 유일한 산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해운육성정책이란 곧 우리 해운기업들이 배를 확보하고 운항하는 데 소요되는 자본과 이자, 세금을 선진해운국과 비슷한 여건으로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둘러싼 환경을 보면 점점 ‘해운 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근해항로 취항 정기선사 간의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을 담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내외 15개 선사에 총 17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국적선사 10건, 외국적 선사 9건 등 모두 19건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1983년 2월 근해항로 취항 정기선사들이 협의체를 결성한 것은 운임을 담합해 과당 이익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제2차 석유 위기와 세계 경기침체로 해운산업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을 때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의 해운산업합리화정책에서도 협의체를 ‘합리화’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2월 1일 외국적 선사인 에버그린의 행정소송에 대해 재판부가 ‘공정위는 해운의 공동행위에 대해 처분 권한이 없고, 해운법으로 처분해야 한다’고 판결했다는 점이다. 근해항로 취항 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건과 관련해 공정위는 ‘공동행위에 대한 처분권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상고장을 제출한 상황이고, 13건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사례는 톤세 일몰제다. 톤세제란 해운기업이 영업이익 대신 보유 선박 톤수에 따라 법인세를 납부하는 제도다. 그리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포르투갈, 핀란드, 미국, 영국, 일본, 대만 등 28개국이 톤세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며,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톤세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부분의 톤세제 시행국들은 일몰제 없이 5~10년 주기로 타당성 검토만 시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톤세제를 도입했다 폐지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 톤세제의 경우, 주요 해운선진국에 비해 세율 자체도 높고 톤세제 적용 대상 선박도 제한적이다. 또 선사의 금융소득은 톤세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처럼 주요 해운선진국에 비해 비교열위인 톤세제마저 2024년 12월 말에 종료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해운 하기 어렵게 된 또 다른 상황은 선박의 침몰 사고에 대해 해운사의 대표 등이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선박매몰’ 혐의로 제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점이다. 선박 침몰 사고에 대한 대표 등의 책임 여부를 다투는 쟁송은 양측이 고등법원에 각각 항소한 상태다.

해운 5대 강국이 되기 위해 ‘해운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해양수산부의 정책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다. 그러나 정책 목표는 달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해양수산부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시기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