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나 충돌 흔적도 없는데…” 원인도 실종 선원도 오리무중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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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어선 전복 사고

제주 먼바다 갈치 어획 줄어들자
옥돔 잡으려고 원정 왔다가 참변

통영시청 제2청사 2층에 마련된 제2해신호 실종 선원 가족대기실. 날벼락같은 비보에 굳게 닫힌 출입문 너머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청 제2청사 2층에 마련된 제2해신호 실종 선원 가족대기실. 날벼락같은 비보에 굳게 닫힌 출입문 너머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김민진 기자

“………”

10일 오전 8시 30분 경남 통영시청 제2청사 2층에 마련된 제2해신호 한국인 실종 선원 가족대기실. 해경에 구조됐지만 끝내 숨진 선장 최 씨 가족들은 이미 떠났고, 또 다른 선원 윤 씨 가족들만 남아다. 윤 씨는 아직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 날벼락같은 비보에 굳게 닫힌 출입문 너머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반투명 유리에 비친 실루엣은 망부석마냥 조금의 미동도 없다.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얼핏 비친 한 가족은 침통한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실종자 가족 지원을 위해 투입된 통영시 공무원들은 행동 하나, 단어 하나가 조심스럽다. 시 관계자는 “어제부터 내내 말 한마디 없이 저렇고 계신다. 오죽하시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2해신호에 대한 이상 신고가 접수된 건 9일 오전 6시 29분이다. 함께 조업에 나섰던 동료 해신호가 “연락이 안 된다”며 제주안전조업국에 보고했다. 그리고 14분 뒤, 붉은 바닥을 드러낸 채 뒤집힌 제2해신호를 발견했다.

해경은 해군, 지자체, 민간구조단과 함께 가용한 인원과 물자를 총동원해 대응에 나섰다. 특히 선원들이 뒤집힌 배 안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잠수구조사 15명을 투입해 선체 수색에 집중했다. 이후 1시간여 만에 선원실 입구와 조타실에서 선장과 인도네시아 선원 2명을 찾아냈다. 이어 사고 지점에서 13km 떨어진 해상에서 또 다른 인도네시아 선원 1명을 추가로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이미 의식이 없던 4명 모두 이미 숨진 뒤였다.

해신호 선단은 평소 제주도 먼바다에서 갈치를 주로 잡았다. 그런데 최근 어획량이 신통찮아지자, 옥돔을 잡으러 통영 욕지도 근해로 원정 조업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연승업계 관계자는 “요즘 욕지도 주변으로 옥돔 어장이 형성되면서 제주 선단들이 많이 찾고 있다”면서 “사고 어선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나머지 실종 선원 행방과 사고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해경과 해군 등이 이틀째 뒤집힌 선내와 주변 해역을 샅샅이 훑었지만 앞선 4명 외 유의미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통영해경은 “전날(8일) 발효됐던 풍랑주의보는 이미 해제된 상태였다”며 “수색에 착수했을 땐 현지 초속 8~10m 바람에 파고는 1~1.5m 정도로 잔잔했다”고 밝혔다. 통상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 15t 미만 어선은 입출항이 통제되는데 제2해신호는 20t인 데다, 29t인 해신호와 선단을 이뤄 운항이나 조업에 제약이 없다는 설명이다.

사고 발생 시점은 전날 밤으로 추정된다. 제2해신호가 8일 오후 8시 41분 무선국에 위치보고를 한 뒤 8시 55분 GPS 상에 항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유발 요인으로 특정할 만한 외부 흔적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고 지점은 수심이 97m 정도로 깊고 주변에 암초도 없다.

통영해양경찰서 이남희 경비구조과장이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통영해양경찰서 이남희 경비구조과장이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수사본부를 꾸린 해경은 선체 인양 작업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원인 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통영해양경찰서 이정석 수사과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민간 전문기관 등과 합동 감식을 벌여 타 선박과의 충돌 여부나 외력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인 선원 가족과는 통영시가 대사관을 통해 연락을 시도 중이다. 시 관계자는 “유관 기관과 협력해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향후 조치는 선주 측과 협의해야 할 듯하다”고 전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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