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MY WAY'를 들으며…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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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시내트라, 54세에 발표한 곡
인생 되돌아보는 중년 감정 잘 담아

아파트 대출, 자녀 학비 등에 벅찬
오늘날 50대는 앞만 보기에도 바빠

연금 고갈 인한 정년연장 논의 씁쓸
최소한의 노후 보장된 사회서 살고파

20대 후반의 어느 심야 라디오 방송으로 기억한다. 입담이 좋아 예능 프로에 자주 출연하던 가수 A가 취향저격 올디즈를 소개하는 코너.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좋고, 10년 후엔 더 좋아질 곡”이라고 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 젊은 나로서도(다시 말하지만 고작 20대 후반이었다)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때로는 앨범 속 시내트라의 목소리로, 때로는 하늘 같은 선배 세대의 혀 꼬인 목소리로, ‘My Way’를 들었고, 그때마다 그날의 방송을 떠올렸다. 한두 번쯤 술김에 객기가 충만해 1080번(금영 노래방 기계의 ‘My Way’ 곡 번호)을 누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곡. 시내트라가 이 곡을 처음 불렀을 때의 나이는 54세였다.

흥건히 취해 노래를 부르는 대선배들은 으레 한 손을 양복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사 정도는 외워야지, 모니터 가사 따라읽기에 바쁘면 곡의 멋스러움이 반감한다. 그 모습을 보며 30대의 나 역시 50대의 어느 날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며 멋스럽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I’ve lived a life that’s full,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해야 할 일을 비겁하게 피하지 않았다(I did what I had to do,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tion)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중년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쉰을 목전에 둔 지금, 나는 여전히 앞만 바라보기에도 벅차다. 어디 나뿐일까. 2024년 한국의 많은 50대들에게 지난 인생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눈 앞에 헤쳐 나가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아파트 대출은 아직 수 년이 남았고, 학비며 용돈이며 입 벌리는 자식놈의 대학 졸업 또한 그 이상으로 남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부족하다.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삶, 역할이라는 게 있다. 흔히들 ‘사회적 나이’라 부른다. 과거에 비해 사회적 나이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수년 전, 현재와 과거의 나이를 비교하는 계산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자신의 나이에 0.8을 곱한 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적 나이’라는 셈법이다. 2024년 현재 60세인 누군가는, 과거 48세 상당의 누군가와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라는 의미다. 결국 예전 50대 후반에 어울릴 법한 ‘My Way’가 이제는 6, 70대는 되어야 어울리는 노래가 된 셈이다.

최근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겁다. 아파트 대출도, 자식놈 학비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50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국민연금이었다. 지난 1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2개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1, 2안의 내용은 달라도 2개의 개혁안 모두 의무가입 상한연령, 즉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나이는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64세까지 연금을 내려면 그때까지 일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정년연장 이야기로 이어졌다.

앞서 말한 ‘사회적 나이’를 고려할 때 정년연장 논의는 결코 이르지 않다. 여기에 0.65명이라는 충격적인 합계출산율까지 더해, 앞으로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이상 60세는 노동시장에서 은퇴할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정년연장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노사 의견도 갈린다. 노조 측은 정년연장을 주장하지만, 사용자 측은 퇴직 후 재고용과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다른 방안을 내놓는다. 정년연장이 단기적으로 청년 취업난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모로 어려운 사안이다.

어쨌든 논의는 다시 시작됐다. “정년연장이든 재고용이든 더 일할 수 있게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50대 형님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논의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62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개혁안이 통과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노조가 앞장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우리와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그들은 왜 정년연장을 반대했을까. 이유는 여유로운 노후에 있다. 지금도 프랑스는 퇴직 후 바로 풍족한 연금 생활에 들어간다. 반면 우리는 정년 3~5년 뒤에나 빠듯한 연금을 받는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계를 꾸리기조차 어려운 사회, 60세까지 일하고도 생계가 빠듯해 더 일하라고 스스로를 재촉해야 하는 이 사회가 씁쓸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당연한 보상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정년연장 따위는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예의 프랑스 노동자들처럼. 무던히 씁쓸한 이 마음은 퇴근 후 소주나 한 잔 걸치고 노래방에나 가서 달래야겠다.

김종열 문화부장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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