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여성 헌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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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제사에 참례하면 안 돼.” 이런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집안에 따라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제사에 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행해져 왔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이전에 비해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조선시대 남녀를 차별한 것이 그대로 제사에도 적용돼 여성은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옛 문헌을 살펴보면 여성이 제사에 참례하지 않는 건 잘못된 풍속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심지어 유교 경전인 〈예기〉에는 ‘제사는 부부가 함께 올린다(夫婦共祭)’고 명시돼 있다. 〈주자가례〉에도 여성은 남자와 똑같이 제사에 참례하게 돼 있다.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제사 참여는 물론이고, 절에서 부모나 조상 제사를 모시면서 그 비용을 아들과 딸이 돌아가며 부담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서원이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임시로 지정되는 제관을 헌관(獻官)이라 한다. 술잔을 올리는 순서에 따라 초헌, 아헌, 종헌관으로 구분된다. 이들을 일컬어 삼헌관이라 했다. 여기서 숫자 삼(三)은 통상 완벽 또는 완성을 의미한다. 고대 라틴어 명언에는 ‘셋으로 이루어진 것은 완벽하다’라는 말도 있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제사를 지낼 때 세 번의 잔을 올리는 것도 이런 의미가 내포돼 있다.

삼헌관 중 초헌관은 제사에서 대표격인 사람이 맡는다. 왕이 참석하는 국가 제사에서는 왕이 초헌관이 됐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한됐던 유교 관례에 의해 초헌, 아헌, 종헌관 모두 통상 남성이 맡아왔다. 경남 통영충렬사(사적 236호)가 최근 봉행한 충무공 이순신 춘계향사에서 창건 이후 418년 만에 ‘금녀의 벽’ ‘관습의 벽’을 허물고 처음으로 여성 헌관을 선임, 제례를 치렀다. 초헌, 아헌, 종헌관 모두 여성이었다. 앞서 2020년 10월에는 경북 안동 도산서원 향사에서 우리나라 서원 600여 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초헌관을 맡은 바 있다. 2021년 9월에는 전남 장성 봉암서원 추향제에서 서원 창건 이후 최초로 여성이 삼헌관을 맡아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전통을 고수해 온 유교 문화도 이제 시대상을 반영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져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사회적 여건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양성평등은 성차별로부터 비롯된 불평등을 극복해야 비로소 실현된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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