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디지털 팔만대장경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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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직후 불교 대장경을 인쇄·출간하고자 뜻을 굳히고는 첨서중추원사(지금의 비서실장 격) 정총에게 발원문을 짓게 했다. 그런데 정총이 “어찌 불사(佛事)에 그리 정성이십니까. 불교를 믿지 마십시오”라며 타박하는 게 아닌가. 태조가 달래었다. “유학(儒學)의 종사 이색도 불교를 믿는다. 믿을 것이 못 된다면 이색이 어찌 불교를 믿겠는가.” 정총은 굽히지 않았다. “이색이 높은 학식에도 남에게 비난을 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태조가 노해서 말했다. “그럼 이색이 그대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

조선왕조(태조)실록에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이다. 이색(1328~1396)은 여말선초 최고의 지식인이자 사대부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대유학자였는데, 그럼에도 불교를 멀리 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대장경도 간행했다. 자신의 부모와 고려 공민왕을 추도하기 위해 나옹 화상과 함께 대장경 간행을 발원했는데, 그 내용이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의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에 전한다. 이색은 불교의 가르침이 유교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그 가르침의 집적체가 대장경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다. 경(經)·율(律)·론(論)으로 대표되는 방대한 그 가르침을 결집해 문자로 남긴 것이 대장경이다. 대장경은 불교가 전해진 나라마다 따로 간행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정밀하다고 평가받는 게 1251년 간행된 고려대장경, 즉 팔만대장경이다. 합천 해인사 법보전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은 8만 1250여 장의 목판에 1530여 종의 불교 경전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의 진정한 가치는 그 엄청난 판각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삶의 진리에 있다 할 것이다. 역대 고승들이 “팔만대장경도 부수고 들어가야 법이 된다”고 일갈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문화재청이 팔만대장경을 온라인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디지털 자료로 구축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해당 서비스는 이르면 2027년께 개시될 전망이다. 현재 일반인이 팔만대장경 경판이라도 볼라치면, 미리 해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해야 그것도 일요일에 겨우 한 번 가능하다. 그러니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제 자리에 앉아서 그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니!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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