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방화 시도 50대 태우고 아찔한 질주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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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방화미수 사건 발생
시민 신고에 역무원 하차 요구
저항하다 도주 후 다음 열차 타
정차·질서 저해 대응 지침 어겨

부산도시철도 1호선에 처음으로 투입된 신조전동차가 운행을 위해 금정구 노포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부산일보DB 부산도시철도 1호선에 처음으로 투입된 신조전동차가 운행을 위해 금정구 노포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부산일보DB

부산도시철도에 방화범이 탄다면 시민 안전은 지켜질 수 있을까? 지난달 발생한 방화미수 사건은 도시철도 대응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2일 〈부산일보〉가 입수한 부산교통공사 안전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9일 발생한 도시철도 방화미수 사건에서 안전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방화미수범 A(55) 씨는 낮 12시 25분께 1호선 구서역에서 장전역으로 향하던 열차 내에서 명함 두 개 크기로 잘라 준비한 종이에 불을 붙여 자리 아래로 던졌다. 다행히 열차 내 불이 붙진 않았지만 겁에 질린 시민들이 12시 30분께 부산대역 역무안전실과 교통공사 콜센터에 신고했다.

두 정거장을 지나 명륜역에서 역무원 1명이 열차에 탑승해 A 씨에게 3분가량 하차를 요구했다. 하지만 A 씨가 욕설을 퍼부으면서 저항하자 역무원과 A 씨를 태운 열차는 동래역으로 이동했다. 동래역에서 A 씨는 하차 후 승강장에 숨어 있다가 다른 열차를 타고 도주했다. A 씨는 다음날 1호선 부산역에서 전날 방화에 사용했던 종이와 라이터를 소지한 채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9월 부산교통공사가 자체적으로 수립한 ‘열차 내 질서 저해자 대응 절차’에는 현장에 출동한 역무원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하차하기 전까지 열차 정차를 기관사에게 요청하도록 관제소의 역할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관제소는 계속 운행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장 열차에 불이 옮겨붙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를 두고 사건 직후 교통공사 내부에서조차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부산교통공사 내부 게시판에서는 ‘열차 내에 방화범이 있는데 출발하는 것은 어느 매뉴얼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구 지하철 사고 때 수준에서 나아진 게 없다’는 글이 올라왔다.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응했던 대구교통공사 측 입장도 비슷하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방화 시도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하차시키거나 승객들을 하차시키는 식의 조치를 한 뒤 운행을 재개하는 게 상식적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지하철 내 치안 공백에 대한 우려도 높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역무원은 1명으로, 비상상황 때 역무원 2인 1조로 대응한다는 내부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어서 다른 한 명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낮 12시 25분께 부산 금정구 장전동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부근을 지나던 전동차 내에서 50대 남성이 불 붙인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제공 지난 9일 낮 12시 25분께 부산 금정구 장전동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부근을 지나던 전동차 내에서 50대 남성이 불 붙인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제공

경찰과 핫라인 시스템은 아예 없었다. 경찰이 상황을 전달받은 것은 교통공사가 최초 신고를 받은 지 6분가량 지난 때였다.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A 씨가 하차한 상태였다. 지하철 역사 내 배치된 경찰 인력도 소용없었다. 교통공사 측에 최초 신고가 이뤄진 부산대역의 다음 역인 온천장역에는 경찰 출장소가 있었지만, 당일은 주말이어서 경찰이 근무하지 않았다.

곳곳에 아찔한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했지만, 부산교통공사는 사건 직후 공문을 통해 ‘역무, 기관, 관제 간 소통으로 사고를 예방했다’고 평가해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보였다.

부산지하철노조 관계자는 “정시운행 강박, 역무원의 현장 대응에 의존하는 시스템, 인력 부족 등은 고질적인 문제”라며 “지난해 탈선 사고 이후 안전 운행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도 했지만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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