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공간이 갖는 역사성 '옛 부산세관 청사 복원'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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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상징… 부산 현대사의 DNA로 삼자

부산항 관문… 성장 발전의 기점
1979년 도로 확장으로 사라져
최근 복원 필요성 공론화돼

박물관·역사관 등 활용 계획
원도심 문화관광벨트 거점 가능

흉내나 재현에 머물러서는 안돼
어떤 도시 물려줄지 질문 던져야

1979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 옛 부산세관 청사(위)와 복원 건물이 들어설 곳으로 부산세관이 구상하고 있는 부산항만공사(BPA) 소유 북항 재개발 1단계 부지. 부산세관박물관 제공 1979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 옛 부산세관 청사(위)와 복원 건물이 들어설 곳으로 부산세관이 구상하고 있는 부산항만공사(BPA) 소유 북항 재개발 1단계 부지. 부산세관박물관 제공

1979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옛 부산세관 청사. 최근 지역 사회에서 이 건물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부산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역사성 있는 건물을 복원해 부산 현대사의 DNA로 삼자는 논의다. 부산세관 내부는 물론이고, 복원을 요청하는 지역 사회, 시민 단체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이든 없어지고 나면 그 가치와 중요성을 안다 했던가? 옛 부산세관 청사 건물이 그랬다. 십여 년 전부터 건물 복원은 지역의 염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건물을 복원할 땅도 예산도 있고, 어느 때보다 복원에 대한 내부와 지역 사회의 열망도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혹자는 “왜 이미 사라진 건물을 굳이 복원하려 하느냐”고 심드렁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옛 부산세관 청사 복원은 그리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복원이 왜 필요한지, 그 당위성을 따져보자.

옛 부산세관 청사 철거 모습. 부산세관박물관 제공 옛 부산세관 청사 철거 모습. 부산세관박물관 제공

가치 있는 자산인가

부산세관은 본래 부산해관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1907년 해관에서 세관으로 그 명칭이 바뀐다. 부산해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것은 1883년. 부산항 개항(1876년) 후 7년 만의 일이다. 관세행정기구지만 근대문물이 유입되는 관문이었다. 세관 설치는 곧 부산 근대화의 출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세관 옛 청사는 1908년에 기초공사를 시작해 1911년 8월에 준공됐다. 좌우가 비대칭적인 L자형 지상 2층 벽돌구조에 건물이 꺾이는 지점에 추가로 2층 높이의 탑신부가 더해진 형태를 취한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으로 지어, 르네상스 양식의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했다. 이 건물은 개항 이후 역사적·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다 보니 당시 부산항의 대표적 건물이 됐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 군수사령부에 징발돼 4년 남짓 미군사무실, 탄약창고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역사성, 건축성을 인정받아 1973년 6월에는 부산시 지방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됐다. 광복 이후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곳도 부산세관이었다. 이렇게 부산항 관문을 지켜온 이 건물은 1979년 부산대교가 건설되면서 도로 확장으로 철거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의 불찰이었다.

부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장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것을 미래 가치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옛 부산세관 청사 복원이 꼭 필요하다. 부산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상징물로 옛 부산세관만 한 건축물도 없다.


복원은 가능한가

옛 부산세관은 부산 근대사의 핵심이다. 근대 부산의 출발이며, 부산항 성장 발전의 기점이다. 따라서 부산세관 복원 없이 부산 근대사 복원이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옛 청사 복원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2018년에도 복원 필요성이 공론화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부지 문제 등으로 현실화하지 못했다. 지금은 본래 자리는 아니지만 복원할 수 있는 땅이 생겼다. 부산세관은 관세청 소유의 국립부산검역소·부산출입국외국인청(2038㎡) 부지를 부산항만공사(BPA)에 넘기고 현재 리모델링 중인 부산세관 건물 뒤편의 BPA 소유 북항 재개발 1단계 부지(1만 3503㎡) 중 일부를 받아 그곳에 옛 부산세관을 건립한다는 복안이다. 새롭게 확보한 부지는 옛 세관 청사가 있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0m가량 떨어진 곳이다.

부산세관 옛 청사 건물 맨 위에 있던 종탑은 현재 세관 청사 뜰에 남아 있다. 당시 기초 설계 도면과 옥탑부 하부 기초 단면도, 철거 때 사진 등도 있다. 부산세관은 건물 복원에 100억 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정확한 소요 예산 규모를 산정 중이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복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때마침 북항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고, 부산항 개항 150주년도 앞두고 있어 시기상으로도 적절하다. 내년에 복원 공사를 시작해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 되는 2026년께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복원을 위해서는 시민 공감대와 전문가 등의 참여가 기본인데, 부산원도심활성화연구회 등 든든한 우군도 이미 확보돼 있다. 지난 2월엔 복원 관련 토론회도 열렸다.


공간 활용은 어떻게

부산세관은 복원한 옛 청사를 시민 편의 시설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은 “복원 청사의 경우 세관박물관이나 부산항역사관, 또는 시민을 위한 복합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항만에는 관련 유물과 함께 항만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역사적인 건축물을 활용해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재질과 형태가 옛 부산세관 청사와 매우 흡사한 일본의 요코하마 개항기념회관은 1917년 지어진 건물로 지금도 역사유물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1908년 군산항에 건립된 군산세관 옛 청사도 호남관세박물관으로 활용돼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1927년 완공된 중국 상하이 세관 청사는 현재도 세관 청사로 사용 중이다. 야경이 수려한 이 건물은 개항기 유럽식 역사 건축물이 즐비한 상하이 와이탄 거리에서도 손꼽히는 관광객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다.

부산은 개항과 한국전쟁, 산업화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대한민국 생활 유산의 보고다. 부산세관의 역사는 개항 후 한국 근대화와 부산의 역사다. 부산세관 옛 청사 복원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란 얘기다. 부산항의 역사를 뚜렷이 드러냄과 동시에 부산항의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복원 건물, 어떤 역할 할 것인가

최근 개관한 부산근현대역사관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하루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시민의 발길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근대 역사에 대한 부산 시민의 갈증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원된 부산세관이 부산항에 얽힌 다양한 기억으로 채워진 박물관이나 역사관으로 거듭난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시민의 갈증 해소와 함께 지워진 근대를 복원하는 일이다.

더불어 복원된 청사 건물은 중구 원도심과 첨단 북항을 잇는 근현대유산벨트 또는 역사문화관광벨트의 연결점이자, 부둣길이 시작되는 기점이 될 것이다.

우리 일상은 도시와 건축, 공간과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도시의 일상과 일상 속 건축엔 많은 사람의 흔적과 이야기가 녹아있다. 오랜 세월 속 이야기가 쌓인 도시는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이야기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도시와 건축,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의 삶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임시수도기념관-동아대 석당박물관-부산근현대역사관-옛 부산세관 청사-부산항 1부두 창고로 연결되는 이 공간은 부산이란 도시의 과거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줄 것이다.


어떤 공간으로 물려줄 것인가

옛 부산세관 청사 복원은 역사를 핑계로 복원이 아니라 재현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성급하게 지금부터 완공 시기를 못 박기보다는 문화재 전문위원의 의견 수렴 등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된 복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복원을 위해선 기초 도면뿐만 아니라 시공 도면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현이 아닌, 복원이라는 점에서 일리 있는 주장이다. 기념건조물과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국제 헌장인 ‘베니스 헌장’에는 ‘추정(conjecture)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은 멈춰야 한다’고 돼 있다.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는 “자칫 복원의 결과가 단순 흉내나 재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 복원하려는지,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좀 더 심도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장소를 복원하는 것은 자칫 박제된 과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부산세관 옛 청사 복원은 우리의 과거 기억을 전달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복원되었을 때 이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기억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공간의 기억을 스스로 환기해 그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현재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도시를 물려주고 싶은가? 복원을 앞둔 지금,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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