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인류에 ‘사족보행’을 허하라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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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존재들 / 텔모 피에바니

<불완전한 존재들> 표지. <불완전한 존재들> 표지.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했나. 사실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기엔 생물학적으로 어설픈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인간은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면서 넓은 시야와 자유로운 양 손을 얻었지만, 동시에 사족보행 동물에선 찾아보기 힘든 허리 통증과 관절염에 시달리게 된다. 갓 태어난 새끼는 십수 년 이상을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야 하는 번거로운 종이기도 하다. 이처럼 불완전해 보이는 생명체가 놀랍게도 자본주의를 만들고 달로 로켓을 발사하는 유일한 종이 됐다. 과연 무엇이 인간을 ‘선택 받은’ 동물로 만들었나.

<불완전한 존재들>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구와 생명체의 등장, 그리고 인류의 출현에 이르는 긴 과정을 빠르게 훑으며 인간이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고찰한다. 이탈리아의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진화를 ‘매우 우연적이며 불완전한 것’으로 설명한다. 단적인 예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현 인류)의 서로 다른 선택(?)을 들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커진 두뇌를 지탱하기 위해 두껍고 짧은 목을 선택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반대로 긴 목을 선택한다. 이 덕분에 목 아래로 이동한 후두가 기도와 성대로 분리되면서 하나의 목구멍으로 동시에 숨 쉬고, 먹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긴 목을 선택한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갖고 살아남으며, 짧은 목을 선택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다.

하지만 긴 목이 완벽한 선택일까.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나로서는 찬성할 수 없다. 휴일 내내 방구석에 누워 빈둥거리다 화장실에라도 가려 몸을 일으킬라치면, 일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삼 느낀다. 직립보행을 인류 불행의 시작이라 생각하는 동지(?)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 텔모 피에바니 지음/김숲 옮김/북인어박스/276쪽/1만 98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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