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진실을 인양하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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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언어가 된 ‘세월호’
참사 당일, 사실관계 기록
10주기…진실이 필요한 때

<책임을 묻다> 표지 <책임을 묻다> 표지

몇 해 전, 친구와 함께 제주도로 ‘뚜벅이 여행’을 떠난 적 있다. 운전면허가 없었던 때라 버스로 관광지를 돌아다닐 심산이었다. 친구도 재밌겠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긴 버스 배차 간격이었다. 제주도의 버스는 도시 곳곳을 누볐지만, 수가 적은 탓에 원하는 시각에 버스를 타기 쉽지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우리 일행은 안내 표지판조차 없는 허름한 버스 정류장에서 하릴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하늘에서는 비까지 주륵주륵 내렸다.

그때,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신을 제주도민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우리를 시내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안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탔다. 이어 그는 “제주도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을 소개해 주겠다”며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기억 공간’이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찬찬히 내부를 살펴본 뒤 밖으로 나왔다. 그는 “관광객에게 이곳을 추천하면 대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며 오히려 우리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세월호’는 언제부터 정치적인 단어가 됐을까. 정치의 언어로 오염된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더욱 아파한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현재진행형인데 “이제 그만해라”는 모진 말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온다. 권력을 향해서는 한없이 무뎠던 비판의 칼날은 피해자인 유가족에게만 날카롭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참사의 10주기를 맞아 세상에 나온 <책임을 묻다>는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작가, 변호사 등이 모여 세월호 사건의 사실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자료 등을 바탕으로 3년간 정리한 흔적을 써 내려갔다. 세월호를 책임지는 선원과 선사의 사고 책임에서부터 해경의 구조 책임, 청와대의 지휘 책임 등을 시간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화물 과적, 편법 증개축 문제부터 박근혜 정부의 진상규명 방해 행위까지 사고 원인과 해결 과정을 총망라한 ‘세월호 백서’인 셈이다. <책임을 묻다>라는 책 제목답게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실명까지 ‘박제’했다.

읽기 쉬운 책이지만 쉽게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 사회의 재난안전 시스템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이미 여러 차례 과적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과 해경의 구조과정이 몹시 어설펐다는 점 등이 세세하게 쓰여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세월호 선원과 선사,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기관 등이 책임 소재를 두고 ‘핑퐁 게임’을 벌이는 동안 304명의 탑승객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정부는 사고 수습은커녕 정보기관을 동원해 유가족의 동향을 파악했고, 물밑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방해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그들의 외침은 ‘떼쓰기’로 치부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일부 시민들은 ‘애도’에도 이유를 묻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10.29 이태원 참사다.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서는 지나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보상 문제를 운운하고 이미 끝난 일이라며 덮어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준형이를 잃은 아버지는 “내 자식은 잃었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더 안전하게 만들자는 요구가 잘못이냐”고 묻는다. 정치의 언어로 변질된 세월호의 진실을 이제는 인양해야 한다. 김광배, 김미나, 장훈 등 지음/굿플러스북/320쪽/2만 2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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