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무효표'의 표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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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효(無效)!” 일반적으로 아무런 효력이나 효과가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행위나 노력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에 보통 무효는 부정적으로 취급될 때가 많다. 사람들도 대체로 의도적으로 한 자신의 행위가 무효로 처리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무효의 행위를 하는 경우가 영 없지는 않다. 선거에서 무효투표 행위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지난주 치러진 4·10 총선에서 역대 최다의 무효표가 속출해 이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다. 애써 투표장까지 가서 투표를 하면서도 유효한 의사표시로 인정받지 못하는 행위를 일부러 벌인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5일 공개한 비례대표 투표 결과를 보면 무효표가 130만 9931표로 전체 투표수의 4.4%를 기록했다.

숫자로 친다면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 조국혁신당에 이어 4번째로 많은 것인데, 만일 ‘무효표당’이라는 정당이 있었다면 3석 정도의 의석 확보가 가능한 수치라고 한다. 부산에서도 투표자 194만여 명 중 약 4.8%가 비례대표 선택에서 무효표를 던졌다고 하니, 무효표에 담은 표심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효표가 왜 이렇게 많은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대 정당의 꼼수 위성정당 등 비례대표 정당의 난립으로 유권자의 혼란과 반발이 극대화된 결과라고 대체로 설명한다. 성인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글자를 몰라 무효표가 양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면, 어느 정당도 마음 둘 데가 없어 일부러 무효표를 만들었다는 해석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어떤 비례 정당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라는 것이다.

투표 포기와 달리 투표율 계산에 포함되는 무효표를 이처럼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표시로 본다면 정치인들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하는 ‘투표 밖의 투표’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무효표를 던지는 행위가 절반을 넘지 않는 한 정치인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견해도 병존한다. 무효표의 정치적인 의미 부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치적 의사표시든 아니든 간에 어쨌든 갈수록 비례대표 무효표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닌 듯싶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한 표가 무효가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하기도 마뜩잖으니 유권자들만 안쓰러울 따름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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