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의 남북 MZ] 탈북 MZ, 남북 통합의 ‘가교’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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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전문성 갖춘 탈북 청년들 곳곳서 활약
남북 체제 모두 경험 국제사회도 관심
통일 과정 화합 주도할 인재로 키워야

제22대 4·10 총선에서 탈북 공학도 출신의 청년이 국회에 입성했다. 탈북 MZ세대 출신의 국회의원은 21대 국회를 포함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모두 4명이 당선됐다. 이는 탈북민의 정치 참여 다변화와 탈북 MZ세대의 부상을 알리는 움직임이다.

그뿐이 아니다. 작년에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양국의 탈북민들이 참여하는 ‘젊은 탈북민 지도자 총회’가 열렸다. 참석한 북한 출신 청년 10명은 변호사, 건축설계사, 작가, 기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영화감독, 정치인, 연구원 등의 직업으로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용산 대통령실은 방문해 보지 못했지만 백악관, 국무부, 의회, 싱크탱크 등의 미 당국자와 관계자들은 청년들을 주목했고 백악관·국무부 등에 초청하여 원탁회의를 가졌다.

총회는 그동안 양국 정부의 대북 통일·북한 인권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실상 소외됐던 기성 탈북 세대를 대신해 탈북 후 정착의 경험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상한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경청하고자 마련됐다. MZ세대 탈북 청년들의 지향성은 이들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통역을 앞세우고 무대에 올라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던 이전 탈북민들과 다르게 청년들은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로 ‘자유’와 ‘평화’에 대해 열띤 연설을 했다.

특히 기성 탈북민 세대는 자신들의 경험을 국제사회에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등교육과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탈북 젊은 세대는 분단을 뚫고 온 각자의 생존 투쟁을 서술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두는 것은 남북 모두를 경험한 MZ세대라는 독특성도 있지만, 향후 한반도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차세대 리더 그룹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통일부 발표 기준으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총 3만 4078명이며 이 중 30대 이하 비율은 72%(한국 도착 당시 나이를 기준)에 달한다. 상당수가 젊다 보니 탈북 청년의 적응은 빠를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한국행이고 남북 두 체제의 경험자이기에 그들의 강점은 명철한 두뇌와 도전 정신일 수밖에 없다. 탈북민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지 20여 년 만에 청년들을 중심으로 의사, 변호사, 교수, 박사, 공무원, 종교인, 국회의원, 언론인, 은행원, 창업가 등 전 분야에 촘촘히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그만큼 한국 사회에 잘 스며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탈북민 주무 부처인 통일부 관계자가 한국 언론은 탈북민의 성공적인 정착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에만 적극적으로 반응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듯 이들 속에도 다양한 고민과 선택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도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 살던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쉽게 적응할 수 없음을 참작하더라도 사회 적응 압력과 관습적 제약 등을 이겨 낸 탈북 MZ세대의 놀라운 적응력은 우리 사회가 발견 못한 아주 희소한 사례일 수 있다.

북한 장마당세대이면서도 한국의 대학에서 MZ세대를 가르치고 있는 필자의 관점에서 북한의 생존 터전인 장마당과 한국 자본주의 경쟁 체제를 동시에 경험한 탈북 MZ의 역할은 한쪽에만 머물 수 없다. 북한의 장마당세대에는 이들의 도전이 의식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고 한국의 MZ세대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토대가 된다. 이것이 교집합을 이룰 때 남북의 MZ는 자신들의 삶을 한반도 안에서 함께 계획하고 상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영호남 유일의 탈북 학생 대안학교인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를 찾은 주한독일대사 미하엘 라이펜슈툴은 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무려 16년 동안 독일 연방 총리를 역임한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함께 역시 동독 출신인 요아힘 가우크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있었기에 독일 통일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메르켈 전 총리와 가우크 전 대통령이 통일 이후 통일국가의 지도자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독일대사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통일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통일 전후의 통합이며 이를 감당할 인재가 중요하다.

남북한 주민 간 소통과 이음에 기여할 수 있는 탈북 MZ세대는 치열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를 상기하면 한국 사회가 관심을 둬야 할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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