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운동복 선정성 논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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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역사적 명성만큼이나 엄격한 드레스 코드로 유명하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을 착용해야 한다. 상·하의와 신발, 모자, 양말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순수 흰색이어야 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왕과 귀족들이 옷에 밴 땀 얼룩을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여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첨단 기술과 패션이 주도하는 현대에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앤드리 애거시는 까다로운 드레스 코드를 비판하며 3년간 윔블던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2023년에야 여자 선수들에게 어두운색의 속바지가 허용됐다.

스포츠 세계에서 복장 논란은 끊이지 않는 이슈다. 2021년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 대회에서는 노르웨이 여자 대표팀이 비키니 하의 대신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 비키니가 불필요한 성적 시선을 유발하고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최 측이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며 선수 한 명당 150유로씩 벌금을 물려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에 미국 가수 핑크는 “기꺼이 벌금을 대신 내겠다. 계속 뜻을 밀고 나가길 바란다”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선수들이 규정된 복장을 갖춰야 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다. 문제는 스포츠 복장 논란이 많은 경우 상업적 이해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2011년 세계배드민턴연맹은 미니스커트 유니폼을 도입하면서 “관객들이 배드민턴 경기에 다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발표해 구설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 한국여자농구연맹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쫄쫄이’ 유니폼을 도입했다 2년 만에 철회했다. 연맹 관계자의 ‘눈요깃감’ 발언으로 여성 선수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여성 육상팀 경기복이 다리를 따라 골반 위까지 깊게 파인 ‘하이컷 수영복’으로 드러나 성적 대상화를 부추긴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육상연맹이 왁싱 비용을 지불하라’ ‘여성 선수 경기복이 남성보다 옷감이 적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경기복은 절대 성능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도쿄올림픽에서 원피스 수영복 대신 몸통에서 발목까지 가리는 ‘유니타드’를 입고 출전했던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의 사라 보시 선수는 “모두가 입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기의 본질에서 벗어난 복장 논란이 스포츠 정신일 리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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