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광고가 미디어를 집어삼키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최근 SBS 드라마 ‘모범택시2’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드라마 내에서 특정 건설사 이름과 홍보 내용을 지나치게 부각해 ‘간접광고’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점이 사유였다. 드라마에 등장한 이 건설사는 남자 주인공이 광고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더욱 큰 논란이 됐다. 또한 특정 건강 제품의 효능을 홍보하는 내용이 버젓이 출연자들의 대사로 나왔다는 점도 제재 사유로 지목됐다. 간접광고는 이른바 PPL이라는 이름으로 이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텔레비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는 드라마 내용과 광고 간의 구분을 흐린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추세다.

드라마에 특정 상품을 슬쩍 노출하는 수준을 넘어 대놓고 강조하는 바람에 드라마의 흐름을 깨뜨리고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다. 몇 해 전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는 특정 자동차 회사 브랜드가 과도하게 자주 나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주인공이 특정 자동차를 모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이다. 아예 드라마 속의 남녀 커플이 뜬금없이 자동차 전시장을 방문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이는 오직 광고를 위해 스토리와 무관하게 억지로 끼워 넣은 에피소드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유명 배우까지 대거 출현한 대작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지나친 간접광고로 스토리가 엉망이 되어 흥행을 망친 작품도 있었다.

드라마 속 PPL 수위 지나쳐 제재

기사 형식 ‘신제품 소개’도 증가세

보도·콘텐츠와 광고 간 경계 소멸

매체 존립 기반 무너뜨리는 행위

광고와 콘텐츠 간의 구분 소멸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부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사형 광고’나 ‘광고성 기사’인데, 이는 기사 형식으로 위장한 사실상의 광고라고 할 수 있다. ‘신제품 출시’나 ‘기술 혁신형 상품’ 관련 정보가 기사형 광고의 전형적인 소재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순수한 광고보다는 기사가 독자의 신뢰를 얻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당연히 광고의 기사화를 선호한다. 이 기사 게재의 조건으로 억대의 대가가 오가기도 하기에 재정이 취약한 회사일수록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의 기사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일방적 주장에 입각해 작성된 것으로, 독자를 기만하고 판단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어 심각한 직업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광고형 기사 실태에 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폐해의 정도를 판단하긴 어렵다. 그런데 2019년 뉴스타파는 광고자율심의기구의 제재 내용을 근거로 일간신문사의 기사형 광고 게재 실태를 조사했다. 소규모의 조사였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 결과 예상과 달리 조중동과 경제지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해 기사형 광고 범람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의 순으로 기사형 광고로 제재를 많이 받았고, 메이저 회사들의 게재 건수를 합산하면 전체 건수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조사 시점 기준으로 기사형 광고의 제재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심의기구 관계자에 의하면 아주 극단적이고 명백한 위반 사례만 집계했기 때문에, 실제 위반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의 간접광고나 신문의 기사형 광고는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 허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윤리 위반 형태다. 하지만 이러한 위반 행위가 초래하는 해악은 기사형 광고에서 더욱 크다. 드라마는 현실을 모사하긴 해도 어차피 허구의 세계를 다룬다. 간접광고는 드라마의 작품성을 훼손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해칠 뿐이다. 반면에 기사는 현실을 정확하고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그래서 허구나 과장에 불과한 광고를 현실의 반영인 기사로 위장하는 것은 체계적인 속임수라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유형을 막론하고 미디어에게 광고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물론 시청자나 독자가 유익하고 흥미로운 드라마와 뉴스를 공짜로 누릴 수 있게 된 데는 광고의 공이 매우 크다. 하지만 광고는 남용하면 미디어의 건강에 치명적인 마약이 될 수도 있다. 방송심의규정이나 언론계 윤리규정이 광고와 기사·콘텐츠의 엄격한 구분을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일종의 유행병처럼 광고와 기사, 광고와 콘텐츠 간의 구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미디어 시장이 일종의 ‘머니 게임’으로 변질하면서 그만큼 경영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광고와 기사의 엄격한 구분은 미디어의 근간인 신뢰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디어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빠져든다면, 이는 곧 자신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