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어도 세상에서 국민행복지수 가장 높은 섬나라 [세상에이런여행] 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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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아니아의 섬 ③ 바누아투>

국민소득 4000달러 불과해도 정신은 풍요
솔로몬서 처음 본 여인, 남편에 “도와줘라”
이방인 배타하지 않고 정성껏 돌보는 인정
덕분에 게스트하우스 묵고 정글까지 구경

틈나면 묘지 가서 부모, 조상 추도가 일상
“돌아가신 분 추억 떠올리면 더 좋은 날”

바누아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다. 국민행복지수 전 세계 1위라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도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당시 바누아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더 관심이 갔다. 1인당 국민소득(GNP)이 4000달러 전후이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는 아니다. 서양의 침략으로 수백 년간 식민지로 살아야 했던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니?

나는 그 이유를 직접 가서 꼭 확인하고 싶었다. 오세아니아의 다른 섬나라들과 함께 여행해야 했기에 가는 데 10년이나 걸렸다. ‘많이 알수록 설렘은 준다.’ 나의 오지탐험은 연애와 같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반얀트리. 사람 10여 명이 앉아도 나무 둘레에 못 미친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반얀트리. 사람 10여 명이 앉아도 나무 둘레에 못 미친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낯선 이도 반기는 섬

솔로몬제도의 일본전쟁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인이 이번 여행의 중심에 있다. 다음 여행지는 바누아투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핸드폰으로 내 얼굴을 찍는다.

“바누아투에 도착하면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여인은 방금 찍은 사진을 남편에게 보냈다 하지 않는가! 얼떨결에 바누아투 공항에 마중 나올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설마’ 하는 심정이 있었다. 1시간이나 연착해 바누아투의 포트빌라 공항에 도착한 후 우선 돈을 환전하고 핸드폰 유심카드를 사서 여인에게서 받은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녀의 남편이 ‘10분 후’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정말 10분 후에 노란색 봉고차가 내 앞에 섰다.

“웰컴 투 바누아투!”

남편의 이름은 제넥이다. 운전은 존이라는 청년이 한다. 앞에서 활짝 웃는 제넥을 보며 나도 미소에 전염된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솔로몬제도서 처음 만난 여인의 남편이 공항에 낯선 여행객을 태우러 달려왔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솔로몬제도서 처음 만난 여인의 남편이 공항에 낯선 여행객을 태우러 달려왔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제넥은 당연히 내가 호텔을 예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디냐고 물었다. 그의 집에서 묵을 순 없는지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말꼬리가 분명하지 않다.

“집이 작고 가족이 많아 불편할 텐데 괜찮겠어요?”

전혀 문제없다며 감사 인사를 했지만 그의 표정은 망설이는 듯했다.

“노모와 함께 사는데 정신질환과 피부병이 있으세요.”

제넥은 이 말을 하면서 더 미안해한다. 여기저기 섬을 안내하면서도 표정이 편치 않아 보인다. 그의 큰 덩치와는 다르게 속삭이듯 내게 제안한다.

“오늘은 일단 이곳 사람들이 머무르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로 가고, 내일 어머니 피부병이 외지인에게 괜찮은지 의사와 상의해본 다음 우리 집으로 가면 어떨까요? 정말 송구합니다.”

제넥은 마치 죄인인 양 몸을 옹송그린다. 덕분에 외국인은 묵고 싶어도 몰라서 못 가고, 불편해서도 못 가는 현지인의 게스트하우스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인은 처음이라는 여사장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들어가니 무엇보다 먼저 멀리 도망치는 바퀴벌레 수십 마리의 반질한 엉덩이가 손님을 반긴다. 곰팡이가 핀 데다 변기 뚜껑도 없어 지저분하긴 했지만 ‘일박에 5000원이면 거저’라고 생각하며 밝은 표정을 짓는다.

제넥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정말 괜찮겠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진짜 마음에 듭니다. 고마워요. 내일 당신의 집에서도 묵을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제넥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제넥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다음 날 아침 나무에서 자라 뾰족한 호두같이 생긴 망가이 땅콩을 곁들여 간단한 식사를 했다. 제넥과 그의 아들 제리와 함께 바누아투의 수도인 포트빌라에서 유일한 정글을 탐험하기로 했다. 제리의 집은 아버지 집 바로 뒤에 있다. 젊은 바누아투인은 어떻게 사나 싶어 제리의 집을 기웃거렸다. 마당에서 네 살인 첫째 딸이 두 살인 동생을 씻겨준다. 나를 쳐다보던 딸의 동그랗고 큰 눈망울을 오래 간직하고자 셔터를 누른다.

정글로 간다더니 제넥과 제리는 집 뒤쪽으로 향한다. 50cm 길이의 큰 칼로 숲을 헤치자 정글이 펼쳐졌다. 야생 바나나와 카사바가 좌우로 꽉 차 있다. 카사바는 고구마, 감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뿌리에 매달린 것도 같다. 이곳에서는 주요 음식재료다.

“두 달 전이라면 코코넛 크랩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정글에 게가 있다고?

“코코넛을 잘라먹을 정도로 집게의 힘이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말로는 웅아라고 하는데, 식당에서 팔기도 하지만 우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제넥 가족과 함께 정글을 산책했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제넥 가족과 함께 정글을 산책했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자연산 과일과 함께 지천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아! 그래서 한 달에 10달러만 있어도 살 수 있다는 거군요.”

많은 나무가 엉겨 붙어 하나를 이룬 게 특이했다. 겹겹의 연리지 같기도 하고, 다른 종의 나무가 한 뿌리 또는 줄기에서 같이 자라는 나무인 키메라 같기도 하다.

“이건 반얀트리라고 해요. 조그만 열매가 열리는데 박쥐 먹이랍니다.”

이곳에 박쥐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리는 섬뜩한 말을 이어간다.

“우리는 이 열매를 먹는 박쥐를 잡아먹지요.”

모르는 게 때로는 약일 수 있다는 말을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세계 제일의 행복 국가

공동묘지를 지날 때였다. 많은 사람과 그들이 가져온 꽃이 주변을 꽉 채웠다.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휴일이거나 날씨가 좋으면 우리는 세상을 떠난 분을 찾아갑니다. 좋은 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에게 가서 형제, 자녀와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랍니다.”

공동묘지를 찾은 바누아투 사람들이 무덤을 꽃으로 장식했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공동묘지를 찾은 바누아투 사람들이 무덤을 꽃으로 장식했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조금 떨어진 무덤가에서 한 여인이 서글피 울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사연을 알려준다.

“가족이라곤 언니밖에 없었는데….”

외로워서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 곁에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컷 울고 가면 슬픔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전히 곁에 있는 듯하다면서 눈물 자국이 선명한 얼굴이 밝게 활짝 펴진다. 코끝이 시큰하고 눈앞이 흐려진다.

연말연시가 되면 부모나 조상을 더 찾는다는 바누아투인.

“돌아가신 분과의 추억을 생각하다 보면 더 좋은 날이 되거든요.”

이래서 세계 제일의 행복지수 국가이며 국민이로구나. 숙연한 느낌에 머리가 절로 끄덕여진다.

언니의 무덤을 찾아가면 위로를 받는다는 한 여인. ⓒ도용복 오지여행가 언니의 무덤을 찾아가면 위로를 받는다는 한 여인. ⓒ도용복 오지여행가

공동묘지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식사시간이 훌쩍 지났다. 누군가 나를 배려해서 싸고 맛있는 중국식당을 추천한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존의 차에 휴대폰을 두고 내린 것을 알아차렸다. 정신을 놓는 일이 없어 소지품을 잃어버릴 일도 없었는데, 묘지에서 얻어 마신 카바 때문일까?

심신을 안정시켜 준다는 음료수라고 해서 주는 대로 한 컵을 다 들이켰는데….

제넥에게 휴대폰을 놔두고 내렸다고 하자 그는 존에게 전화를 걸어 차 뒷좌석을 확인해보라고 한다. 그런데 없다고 한다.

그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휴대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와 찾아내는 재미가 섞여 만들어낸 장난기였다. 제넥의 안내로 방송국을 찾아가서 아나운서에게 방송을 부탁했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습니다.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상금으로 5만 바투(약 55만 원)를 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교회나 슈퍼마켓 앞에 ‘잃어버린 핸드폰 찾아주시면…’이라는 내용의 경품 문구를 붙여놓고 기다렸다.

핸드폰을 찾으면 시상식도 벌이고자 했던 이벤트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건 바누아트인의 천진난만함에 물들어서이지 않았을까? 돌아와 생각하며 또 웃는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고도 웃는 바보가 됐다.

도용복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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