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도시 입장료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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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과 사생활 침해 때문에 도저히 창문을 열고 살 수가 없다.” “평일·주말 안 가리고 사람들이 몰려와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간다.”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계 주요 관광지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특정 지역에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침해하는 과잉 관광(Overtourism)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부 관광지에선 주민들이 앞장서서 “이젠 제발 그만 좀 와 달라”고 할 정도다.

아프리카 서북부 해역에 위치한 카나리아제도는 스페인령 군도다. 화산 지형과 연중 내리쬐는 햇살로 유명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이곳엔 주민 220만 명의 7배가 넘는 16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그러자 수만 명의 주민들이 ‘관광 중단’이란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와 관광객들에게 항의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이러한 과잉 관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그리스 산토리니, 일본 오사카, 필리핀 보라카이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와 서울 북촌 한옥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이 비슷한 경우다. 과잉 관광이 문제가 되자 지난해 초 프랑스에서는 루브르박물관의 하루 방문객을 4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제한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최근 연간 방문객이 2000만 명을 넘자 새 숙박 시설을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다. 한때 25만 명이 넘었던 인구는 쪼그라들어 지금은 5만 명에 불과하지만, 관광객은 매년 2500만~3000만 명이 찾고 있다. 이렇게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민들의 생활이 힘들게 되자 베네치아는 오는 25일부터 당일치기 방문 관광객을 대상으로 도시 입장료 5유로(약 7000원)를 부과하기로 했다. 6월부터는 단체 관광객 수를 25명으로 제한한다. 도시 입장료 부과는 세계 도시 중 처음이다.

이제 과잉 관광은 전 지구적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나 심각했으면 베네치아가 도시 입장료 부과까지 들고 나왔을까. 전문가들은 과잉 관광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자칫 관광지로서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서는 인간과 지구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관광의 책임 있는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마침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기 위해 탄소 배출 감축에 노력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 모두 이 문제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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