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찐로컬 로드'와 부산공동어시장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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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중앙동서 자갈치로 이어지는 ‘찐로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단절되는 아쉬움
야간부녀반·바닥 위판 등 스토리 풍부
‘찐로컬’ 가치 살리는 현대화 기대

미식을 빼고 여행을 논하기는 어렵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을 여행할 때 ‘해산물’이 빠졌다면 미완의 여행일 것이다. 소위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부산 풀코스’에는 미슐랭에서 인정한 돼지국밥집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명소인 전포카페거리도 포함되겠지만 해산물을 빼놓고는 풀코스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풀코스 중 미식에, 그 중 해산물에 방점을 찍으면 찍을수록 원도심으로 무게가 실린다. 특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아니라 로컬들이 가는 ‘찐로컬’의 미식을 추구한다면 원도심을 빼놓고 말하기가 어렵다. 원도심인 부산 중구 일대에는 숨겨진 오래된 맛집이 많다. 중구 중앙동 일대에는 물메기탕, 생대구탕 같은 클래식한 음식들이 가득하다. 노포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고 나면 ‘광안대교뷰’와는 다른 매력의 ‘영도대교뷰’를 볼 수 있는 포차들이 이어진다. 포차들을 지나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자갈치시장이 나온다. 관광지로 유명한 탓에 자갈치시장은 찐로컬의 맛은 덜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부산스러움을 품고 있다.

아쉽게도 부산 바다를 품은 ‘찐로컬 로드’는 자갈치시장을 끝으로 단절된다. 송도해수욕장이 최근 케이블카, 용궁구름다리 등의 인프라가 확충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자갈치시장에서 송도해수욕장까지 공간은 퀭하기만 하다.

그 단절의 중심에 부산공동어시장이 있기에 찐로컬 로드의 끊김은 아쉽다. 왜냐하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찐로컬적 요소가 듬뿍 담겨 있기 곳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곳에는 전국에서 가장 신선한 고등어로 요리를 한다는 구내식당이 있다. 구내식당에는 고등어구이, 고등어조림 등의 고등어 전문 요리를 선보인다. 고등어 요리가 다 비슷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눈앞에 보이는 위판장과 생선 냄새가 미각을 더욱 활성화시킨다.

여기에 스토리를 더하면 찐로컬의 향은 더욱 찐해진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63년 부산항 1부두에 ‘부산종합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장했다. 이후 1971년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1973년에 현재 위치인 부산 서구 남부민동에 자리를 옮겼다. 국내 연근해 수산물 중 30%, 특히 고등어는 80%가 어시장을 거쳐 전국에 유통된다. 괜히 고등어가 부산 시어가 아니다. 이러한 역사성 때문에 부산시가 지난해 말 부산미래유산에 부산공동어시장을 선정했다. 시각적 효과, 후각적 효과에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고등어의 맛이 더욱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동안 부산공동어시장이 찐로컬적인 요소는 풍부했지만 비위생적이라는 오명에 관광지로서 매력이 없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올해 말 현대화 작업을 앞두고 있다. 현대화가 진행되면 위판 방식, 경매 방식 등이 달라져 현재의 모습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된다. 비위생적이라는 오명도 씻겨나갈 것이다.

다만 사라질 현재의 모습에 대한 기록도 없다는 점은 아쉽다. 2014년 발간한 부산공동어시장 ‘50년 사’ 책이 전부다. ‘찐로컬’의 맛을 배가시켜줄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4개월간 현장동행과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생생하게 영상과 기사로 담아 독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이유다.

추운 새벽 10시간가량 쪼그려 앉아 어종과 크기에 따라 일일이 손으로 분류하는 ‘야간부녀반’, 위생과 선도 문제가 있지만 빠르고 대량 위판을 가능하게 하는 ‘바닥 위판’, 생선에 이물질이 붙는 것을 방지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목재 어상자’, 국내 최대 위판량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수지식 경매’ 등은 현대화 사업과 발맞춰 사라질 어시장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이외에도 배에서 수백kg의 고기를 뜰채로 떠 육지로 옮기는 ‘양륙반’, 품질에 대한 집착으로 최상의 고기를 골라내는 ‘중도매인’, 선도·시세 등 엄청난 정보를 종합해 단 몇 초 안에 호가를 부르는 ‘경매사’들의 노하우도 우리의 미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어줄 훌륭한 조미료다.

사람뿐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기 배송과 선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얼음을 공급하는 냉동창고, 어시장 작업자들의 허기를 달래줬던 식당, 다방, 잔술집, 리어카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도 부산공동어시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대화 이후 이러한 찐로컬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요리될지 궁금하다. 단순하게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찐로컬의 향을 어떻게 남기느냐를 두고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고등어에는 두뇌에 좋은 DHA가 풍부하다고 하니 찐로컬 로드를 길게 연장시킬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부산 풀코스에 부산 시어인 고등어가 빠지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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