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폐사지를 찾아서] 33. 선방사지와 배리 삼존불
입력 : 2016-03-31 19:05:31 수정 : 2016-04-03 14:33:00
본존불 순진무구한 미소… 절대 겸손의 부처를 만나다
모두 코끝을 손상당한 삼존불이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온화하게 서 있다.경주 남산의 수많은 유적은
통일 전·후기 300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주로 통일 이후이고 이전 것은
거의 없다.
배리 삼존불은 감실부처, 삼화령
애기부처와 더불어 통일 이전을
대표하는 석불이다.
초기 불상이라 어리숙하고
착한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
감실부처가 앉아있다면, 삼화령
불상의 좌·우 협시보살은
서 있고 본존불은 앉았다.
그에 반해 여기 배리 삼존불은
모두 서 있다. 골짜기 이름이
선방곡(禪房谷)인 것도
배리삼존불이 있는 이 일대가
선방사 절터였기 때문이다.
목이 잘린 석불이 계곡 옆에
누워 있고, 산 정상에는 희미한
마애불이 알 듯 모를 듯
슬픔으로 울먹이며 서 있다.
■마음을 씻고 속세를 끊는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봄날이다. 철 따라 꽃은 어김없이 피지만 필 때마다 새롭고 신비로워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꽃같이 남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
흩어져 있던 탑재들 모아
신라 후기 때 세운 석탑 '눈길'
계곡 옆엔 목 잘린 석불
산 정상엔 희미한 마애불
알 듯 모를 듯 슬픔으로 울먹
삼존불이 있는 선방계곡 입구에 들어섰다. 돌계단에 세심단속문(洗心斷俗門)을 새긴 돌기둥이 길게 서 있다. 불법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마음이라도 씻고 맑게 들어가기로 했다. 층계를 오르자 새로 지은 삼불사에는 망자를 위한 제를 올리고 있었다. 상주들은 스님의 독경 소리와 내리쬐는 봄볕에 슬픔을 삭이고 있었다. 살다보면 누구든 힘들고 고통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제가 끝나고 아이가 맑게 뛰놀고 상주들의 밝은 목소리로 보아 원통하거나 서러운 죽음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삼불사야 근래에 지은 것이지만 균형 잃은 석탑은 이 주위에 흩어져 있던 탑재들을 모아서 신라 하대(880년)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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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방사지 석탑과 삼불사. |
■절대의 겸손 태양의 남중고도가 30도 정도인 겨울이라면 모를까 지금같이 봄 햇빛이 내리쬐면 보호각을 씌워 놓아 햇볕이 불상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통통한 석불이지만 표정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면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 그 자체였다. 절대의 겸손이 이럴까. 절하는 동네, 배동(拜洞)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신라 시대 효심 지극한 어느 재상이 부모 기일에 훌륭한 스님을 모셔 오라 했다. 모셔온 스님의 차림이 남루하여 하인과 스님을 나무라자 스님은 재상을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소매에서 사자를 꺼내어 타고 가버렸다. 재상은 머리를 수없이 조아리며 절을 했다 하여 선방골에서 배리, 배동으로 불린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돈 가지면 목에 힘주기 마련이다. 요즘의 고화질TV로 힘깨나 쓰는 정치인의 표정을 유심히 보면 맑은 영혼은 없고 니글니글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던가. 혁명이 로맨틱하다면 정치는 최고의 예술이라 했는데…. 그래서 일찍이 장 자크 루소가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다. 의원이 선출되면 국민은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고 '사회계약론'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 20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이라 온 나라 출마자들이 한 표 달라고 머리 숙여 조아린다. 당선되기 위해 15일만 고개 숙이면 1천445일은 폼 재고 다닐 수 있으니까.
■착함과 온화함  |
| 순진무구한 본존불의 미소. |
여기 불상은 주위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23년에 세워 놓았다. 삼존불 모두 코끝을 손상당했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주인공 본존불은 순수한 영혼의 착한 모습이라 한없이 정감이 간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을 살포시 내려 깔고, 입가에 웃음 머금은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이 아기 같은 모습으로 왼손 바닥을 아래로 내밀어 중생들의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는 시흥원인(施興願印)의 수인이다. 오른손은 손을 들어 선서하는 모양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의 거룩한 마음이다.
좌협시의 관음보살은 머리를 뒤로 제쳐 본존불 백 믿고 약간 뽐내는 모습인데 밉지가 않고 애교스럽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착한 마음에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고, 다리와 발을 가지런히 모아 순수성과 예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본존불과 우협시가 반듯하게 서 있는데 반해 이 관음보살은 뒤에서 보면 S라인의 굴곡을 주어 내재된 섹시미를 살짝 드러냈다.
오른쪽 대세지보살은 다소곳한 모습인데 목에서 발등까지 온몸에 주렁주렁 과하게 치장해 놓았다. 본존과 좌협시가 발등에 가는 선으로 표현했다면 이 보살은 발가락 하나하나를 표현해놓았다. 발아래 대좌도 앙련과 복련의 화려한 장식으로 해놓았다. 본존과 좌협시가 이질적이라 우협시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문도 갖게 한다. 두광에는 다섯 화불이 새겨져 있다. 여기 삼존불은 온화한 순수함이 풍겨 나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쓰러져 있는 석불과 서 있는 마애불 |
| 진달래를 앞에 두고 서 있는 마애불. |
여기서 산 계곡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있는 석불이 있다. 머리 옆에는 활짝 핀 진달래, 발 옆에는 피고 있는 진달래가 슬픈 위로를 보내고 있었다. 다시 나와 마애불이 있는 산등성이 산길을 올랐다. 늦은 오후라 내려오는 사람 두어 명 마주쳤고, 온통 피어버린 진달래가 붉은 웃음으로 반겨주어 기쁨으로 올랐다. 경주 남산은 높고 깊은 산은 아니라도 아기자기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정겹고 매력적인 산이다. 이 수많은 크고 작은 바위에 숨은 듯이 무심의 경지로 불상을 새기고 탑을 만들고 절을 지었던 것이다.
오늘같이 봄이면 진달래가 바위와 소나무 틈에서 숨바꼭질하듯 정겨움을 주는 산이다. 등 뒤에 업혀 있던 해가 미끄러지듯 내려가 몸이 가벼워질 때쯤 마애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길을 40분 정도 오르니 가벼운 땀이 날 정도에서 맞이한 마애불은 희미했지만, 거친 바위 그대로에 새겨 투박한 자연미의 마티에르(질감) 효과가 정겹다. 여기도 왼쪽 앞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오른쪽 곁에는 수줍은 꽃봉오리가 순정을 흘리고 있었다. 진달래꽃의 붉은 매력에 취해 나도 모르게 입으로 따 먹어버렸다.
kjsuojae@hanmail.net
이재호기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