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을 가다] 페루 파라카스 바예스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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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지역 문명에 물들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날갯짓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바예스타 섬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형적 조건과 풍부한 먹이로 바닷새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

남미 여행 4일째. 3박 4일간 머물렀던 리마를 떠나 파라카스로 간다. 해양 생물의 천국 바예스타(Ballestas) 섬을 투어하기 위해서다. '작은 갈라파고스' 또는 '가난한 이들의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을 가진 바예스타 섬.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갈라파고스를 관광하는 데는 1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일반 여행객들은 갈라파고스 대신 바예스타 섬을 많이 찾는다.

해양 생물 천국 '작은 갈라파고스'
2개 큰 섬과 20여 개 작은 섬 구성

관광객들은 섬 상륙 허락 안 돼
배로 섬 주변 돌며 생물들 관찰
쾌속선 관광 시 40분가량 소요

잉카제비갈매기·훔볼트펭귄 등
낯선 생물과의 조우 '특별한 경험'

■한적한 어촌 파라카스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를 따라 한 번도 쉬지 않고 질주한 고속버스는 4시간 만에 파라카스에 도착했다. 2층 버스는 시설이 매우 고급스럽다. 의자가 여객기 비즈니스석에 버금갈 정도로 넓고 안락할 뿐만 아니라 비디오 시설도 갖췄다. 식사도 제공된다. 좌석마다 다소 차이가 나지만, 평균 65솔(1솔=약 340원)의 비용으로 이 정도 호사를 누릴 수 있다니, 남미 여행만의 특권이랄까.

고속도로 양쪽은 황량한 사막뿐이다. 그런데 사막 위에도 곳곳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빨래가 흩날리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긴 이 세상 어디엔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파라카스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 우리는 해변으로 갔다. 파라카스는 피스코주에 있는 자그마한 어촌 마을로 바예스타 섬을 찾는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여행 비수기인 지금은 비교적 한적한 편이다.

우리는 저녁에 해변 식당에서 해물 요리와 피스코 사워로 저녁을 먹었다. 피스코 사워는 포도를 증류해 만든 술에 레몬즙과 시럽 등을 섞은 후 계란 흰자 거품을 올린 칵테일로 살짝 매콤하면서도 단맛이 난다. 파라카스 특산주다.

바예스타 섬으로 가는 길에 본 사막 언덕에 새겨진 촛대 모양 그림
■천연비료인 '구아노'로 유명

다음 날 바예스타 섬 탐방에 나섰다. 51솔을 주고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탑승 전 현지 해설사는 유창한 영어와 스페인어로 5분여간 파라카스와 이곳 주민들의 삶을 설명했다. 호수처럼 잠잠한 바다에는 어선 수백 척이 그림처럼 떠 있다.

관광객 40명을 태운 배는 시속 60㎞로 내달린다. 바예스타 섬은 육지에서 35㎞쯤 떨어져 있다. 바닷바람이 한없이 시원해 가슴이 뻥 뚫린다. 배가 달리는 동안 왼쪽으로는 파라카스 반도가 길게 쫓아오고 오른쪽엔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이 길을 터준다.

10여 분쯤 달리다가 배가 잠시 멈춘다. 해설사가 왼쪽 파라카스 반도를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머리를 드니 사막에 촛대를 형상화한 거대한 지상화 칸텔라브로가 보인다. 70~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것은 내일 찾아갈 '나스카 라인'의 예고편인 셈이다.
바예스타 섬에서 쉬고 있는 펠리컨들.
배는 다시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한다. 가는 도중 해변에 펠리컨들이 나와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펠리컨은 털 색깔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20여 분 더 달리자 바예스타 섬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m 전부터 바닷새들의 군무가 푸른 하늘을 수놓고 있다. 마치 여행객을 환영하는 퍼레이드라도 벌이는 것처럼. 구아노가마우지는 바다에 수직으로 뛰어내리며 물고기 사냥 쇼를 벌이고 있다.

마침내 바예스타 섬에 도착했다. 섬은 큰 섬 2개와 작은 섬 20여 개로 이뤄져 있다. 섬에 접근하기 전부터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새똥, 즉 구아노 냄새다. 바예스타는 구아노 산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곳이다.

수만 년 동안 새똥이 쌓인 것을 구아노라고 부른다. 잉카 시대부터 사용된 천연비료로 식물 재배에 효과가 탁월하다. 유럽은 산업화 이후 비료 수요가 급증했다. 그래서 처음엔 구아노가 페루 경제를 살렸다.

그러나 구아노가 고갈되자 페루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새로운 구아노 터를 발견한다. 여기는 본래 볼리비아 영토로, 볼리비아는 칠레와 영국계 자본의 회사에 세금을 매기려 한다.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 지원으로 칠레는 구아노를 차지하기 위해 쳐들어간다. 이것이 새똥 덩어리를 둘러싼 '남미 태평양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볼리비아와 연합한 페루는 패전국이 되면서 폐허가 되고 볼리비아는 바다로 나가는 통로를 모두 잃어버리는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20세기에 독일이 화학비료를 개발해 구아노는 '똥 덩어리' 신세가 됐지만, 새똥을 둘러싼 국가 간 전쟁이라니 쓴웃음이 나온다.
섬 전경.
■가마우지 등 바닷새의 천국

구아노가 많다는 건 바닷새들이 그만큼 많이 서식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구아노가마우지, 갈색바닷새, 잉카제비갈매기 등 엄청난 양의 바닷새 무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 작은 섬에 무려 100만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섬은 까만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보면 새들이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다.

관광객들은 섬에는 상륙하지 못한다. 이곳이 페루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엄격히 관리되고 있어서다. 대신 쾌속선이 천천히 섬 주변을 돌므로 관광객들은 섬의 생물들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섬은 온통 바위와 사막뿐,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땅이지만, 바다 생물들에겐 더할 수 없는 천국이다. 이곳 바다가 훔볼트해류 영향으로 풍부한 어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물개들.
해변 바위 곳곳엔 물개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워낙 자주 관광객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배가 접근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떤 녀석들은 마치 황소처럼 우렁찬 울음을 내뱉기도 한다.

한쪽엔 앙증맞은 훔볼트펭귄이 아장아장 걷고 있다. 훔볼트펭귄은 근대 지리학의 시조라 불리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가 처음 발견해 붙인 이름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훔볼트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남미 여행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훔볼트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훔볼트는 독일 태생의 학자였다. 천문학과 생물학, 해양학 등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탐험가이기도 했다. 남미 곳곳을 누비며 지질과 식생 등을 탐사했다. 압권은 에콰도르 침보라소(6268m) 등정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서구에 알려지기 전 침보라소는 세계 최고봉이었다. 이 고봉을 산악인이 아닌 지리학자가 5907m까지 오른 것이다. 정상 정복엔 실패했지만, 당시 훔볼트의 등정 기록은 3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훔볼트는 남미의 독충, 풍토병 등과 싸우면서도 90세까지 살았다. 어지간한 체력과 정신력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인생역정이다. 당연히 명성도 얻었다. 훔볼트해류나 훔볼트펭귄 등에서 보듯 19종의 동물과 15종의 식물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자연현상, 교육기관, 산맥, 호수 등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선 나폴레옹 다음으로 유명한 사나이였다.

40여 분간 섬 주변을 돈 배는 다시 항구로 돌아간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45분가량. 쾌속선을 이용해 바예스타 섬으로 가려는 관광객은 보온을 위해 평소보다 따뜻한 옷을 입을 것을 권한다.

파라카스(페루)/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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