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을 가다] 이카사막·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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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오아시스 덕분에 사막은 내내 아름다웠다

이카사막에 있는 아름다운 와카치나 오아시스

남미 여행 5일째. 파라카스를 떠나 이카(Ica)로 향한다. 오전 11시 20분 출발한 크루즈 델 수르 소속의 고속버스는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를 1시간 30여 분만에 주파한 끝에 이카에 도착했다. 이카로 오는 내내 창밖 풍경은 삭막했다. 연간 강수량이 거의 0에 가깝다 보니 산도 벌판도 사막으로 변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간간이 나타나는 오아시스 마을들에선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카 시내서 5㎞ 거리 와카치나 마을
이카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로 형성

버기 투어·샌드보딩 색다른 즐거움
어둠 내리면 여행자들의 파티장 변신

아찔한 즐거움을 주는 버기카
■스릴 만점 '버기 투어'

식민지풍 도시인 이카에도 고고학박물관이나 산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성당 등 볼거리들이 제법 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시내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한 뒤 택시에 나눠 타고 목적지인 와카치나(Haucachine) 오아시스 마을로 곧장 달렸다.

와카치나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모래언덕을 만난다. 이카사막이다. 이카 시내에서 불과 5㎞ 거리에 이처럼 거대한 사막이 있다니,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와카치나 마을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 뒤 가벼운 옷차림과 샌들을 신고 사막으로 향한다. 오늘의 목적은 버기 투어와 샌드보딩 체험.

예약한 버기카 2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버기 투어란 버기라 불리는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언덕을 질주하는 것. 마을에서 200여m 떨어진 사막 언저리에는 버기카 100여 대가 나란히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탈 버기카의 운전기사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출발한다는 예고도 없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울리며 버기카는 사막 위를 날아간다. 차는 연식이 하도 오래돼서 쿠션이 거의 없다. 차량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일행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스릴을 만끽한다.

모래 언덕을 단숨에 박차고 올라가자 모래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버기카는 마치 싸움질하는 소처럼 거칠게 날뛴다. 노련한 운전기사는 험한 지형만을 잘도 골라 차를 몰아붙인다. 20여 분간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울리며 달리던 차량이 사막 한가운데쯤에서 멈춰 선다. 고립무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모래뿐이다. 간간이 바람이 불어와 후끈 달궈진 몸의 땀을 훔친다. 거대한 사구가 산처럼 굽이치고 모래 무늬들이 마치 호수의 잔물결처럼 가지런하게 파동치고 있다. 사막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능선의 곡선미가 한없이 아름답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사막은 명암이 뚜렷해진다. 사막에선 오로지 바람만이 황홀한 풍경의 연출자다.
뚜렷한 사막의 경계선
■불현듯 '어린 왕자'를 생각하다

30여 분간 사진을 찍고 즐긴 후에 우리는 버기카를 타고 샌드보딩장으로 이동한다. 60도가 넘는 급경사의 모래 언덕이 눈앞에 아찔하게 나타난다. 길이는 100m쯤 돼 보인다. 경사가 심한 스키장을 연상하면 된다.

운전기사는 한 사람당 하나씩 나무 보드를 나눠주고 보딩 요령을 설명한다. 우선 정연홍 대장이 '조교 시범'을 보인다. 자주 타 본 정 대장은 멋진 자세로 쏜살같이 언덕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음은 내 차례. 긴장돼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보드에 엎드리자 운전기사는 약간의 요령을 설명한 뒤 아래로 밀어붙인다. 순간 가슴이 출렁한다. 발로 브레이크를 밟아 보지만, 보드는 모래를 가르며 점점 가속도를 붙인다. 온몸으로 속도감을 느끼며 하강한 후에 무난히 안착했다. 불과 10여 초의 짧은 시간이다.

3~4번씩 보딩을 체험한 뒤 다음 보딩장으로 이동한다. 이번엔 경사가 훨씬 가파르고 길이도 200m쯤 돼 보인다. 중간에 전복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워낙 부드러운 모래여서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는다.

샌드보딩이 끝나자마자 버기카는 우리를 싣고 서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10여 분쯤 내달려 떨어지는 해를 가까스로 따라잡았다. 해가 사막의 지평선을 반쯤 넘어가고 있다. 서쪽 하늘은 석양으로 붉게 물들어 황홀하기 그지없다. 일행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정신이 없다.

사막에서 황혼을 대하니 불현듯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화가라는 꿈을 버리고 비행기 조종사가 된 '내'가 사막에 불시착해 어린 왕자를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어린 왕자>.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여우의 이야기가 오래 여운을 준 동화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에 불시착한 조종사 내지 어린 왕자가 아닌가. 삶은 어쩌면 사막처럼 황량한 지구별에서 서로 길들이고 길들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일 터. 나는 그동안 어떤 사람과 사물에 길들고 있었던가….
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의 해질녘 전경
■사막 속 오아시스 마을

사막의 어둠은 순식간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버기카는 다시 우리를 싣고 질주하기 시작한다. 운전기사는 왔던 길로 되돌아오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차를 모는 것 같다. 하기야 사막에 길이 있을 리가 있나. 마음 내키는 곳이 바로 길이 아니겠는가. 정 대장이 10솔(1솔=약 340원)의 팁을 줬더니 신이 난 운전기사는 다시 험악하게(?) 차를 몰기 시작한다. 20여 분쯤 질주한 끝에 버기카는 처음 자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와카치나 마을로 돌아와 샤워한 뒤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려 본다. 와카치나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마을로, 교통체증과 사람들로 붐비는 이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키 큰 야자수로 둘러싸인 오아시스 주변에는 숙소와 식당, 카페, 여행사 등이 모여 있고, 그 뒤로 그림 같은 사막의 모래 언덕이 펼쳐져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이카사막이 아름다운 건 와카치나 오아시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작은 마을은 원래 페루 상류층들의 휴양지였으나, 지금은 배낭여행자들의 파티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오아시스 마을은 천천히 돌아도 10여 분이면 족할 만큼 작지만, 1박의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이 높다.

어둠이 내리면 사위는 온통 어둠에 휩싸이지만, 와카치나 마을은 하나둘 불이 켜지면서 낮보다 더 화려한 빛의 향연을 연출한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 한 점 불빛이 반짝일 것이다. 내 남은 삶에서 사막 같은 황량한 시간이 다가와도 이카사막과 와카치나 오아시스를 생각하면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옆구리를 스쳐 갈 것 같다.

이카(페루)/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여행팁

숙소·버기 '묶음 상품' 많아

이카 시내에서 와카치나로 들어가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택시를 타기 전엔 흥정이 필수다. 사람 수에 따라 5~10솔이면 된다. 와카치니 입구에 도착하면 숙소와 버기 투어를 묶어 관광상품으로 판매하는 현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숙소는 도미토리에서 별장형 호텔까지 매우 다양하니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윤현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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