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임대료가 부산 관광 개성 지웠다 [우후죽순 무인숍]
인건비·임대료 못 견딘 가게
핵심 상권에서 쫓겨난 자리에
오락실 등 무인 가게로 대체돼
해운대·서면 등 주요 관광지들
정체성 잃고 획일적 거리 변모
지역상생구역 지정 등 대책을
부산의 대표 관광지인 수영구 광안리 해변 상권에 대형 오락실과 뽑기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22일 오후 광안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뽑기방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올해 8월까지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43만 명. 부산의 거리 곳곳에서 이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역대 최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부산의 얼굴인 광안리·서면 등 주요 상권은 무인 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서며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핵심 상권마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거리로 변한다면, ‘관광도시 부산’의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커지는 획일화 우려
〈부산일보〉 취재진이 22일 서면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옛 태화백화점 일대 젊음의 거리와 주변 골목을 따라 약 200m 구간을 둘러본 결과 인형 뽑기 매장과 오락실은 22개, 가챠(캡슐 장난감 뽑기) 매장은 18개, 무인사진관은 11개였다. 4평 남짓한 무인 인형뽑기방부터 가챠 기계 1000대 이상을 갖춘 대형 매장까지 규모도 제각각이었다.
해운대 구남로 역시 서면과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 도시철도 2호선 해운대역에서부터 해운대해수욕장까지 약 500m 구간에 대형 오락실만 8곳이 영업 중이었다.
주요 번화가에 오락실과 가챠 전문점 등 무인점포가 우후죽순 생기는 배경에는 높은 임대료와 소비문화 변화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반 음식점과 소매점은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으로 핵심 상권에서 버티기 어렵다. 반면 무인 또는 1~2명의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는 오락시설은 상대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적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동의대 홍준성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일반 음식점과 소매점은 임대료 부담이 커지면서 기존 상권에서 쫓겨나고 건물주가 원하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종으로 오락실이 자리 잡은 셈”이라고 진단했다.
관광객들의 소비 문화 변화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인형뽑기나 오락실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산의 중심 상권에 서울 등 수도권에서 먼저 유행을 탄 체험·오락형 업종이 밀려들면서, 부산의 대표 관광지들마저 전국 주요 번화가와 다를 바 없이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높게 형성된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무인·대형 자본 점포만 살아남으면서, 상권의 개성을 만들었던 초기 상인들이 다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체성 지킬 보호 장치 시급
부산시에 따르면 올해 1~8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43만 462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9%나 증가했다. 내국인 관광객도 증가 추세다. 한국관광데이터랩 자료를 보면, 4월 기준 부산을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전월 대비 3.7%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부산의 관광객은 늘고 있지만, 정작 주요 관광 상권에서는 부산만의 특색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처음 방문한 관광객이 재방문으로 이어지려면 지역 고유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확보해야 하지만, 상권의 획일화 심화로 인해 다시 찾을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관광객도 부산만의 매력을 느끼고 싶어했다. 서울에서 부산을 방문한 조영찬(27) 씨는 “부산 주요 상권이 서울 상권과 비슷해 크게 특색이 없게 느껴진다”며 “부산은 바다와 공업, 항만에 강점이 있는 도시인 만큼 역사와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볼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대료 조정을 통한 상권 활성화를 제안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역상생구역 지정이다. 지역상생구역은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는 상권에서 건물주와 상인 간 상생협약을 통해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등의 진출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다. 영산대 서정렬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상생구역 지정과 함께 지구단위계획이나 경관 관련 조례 등을 활용해 지역 특색을 살리는 업종과 거리 경관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