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읽기] 불면증 사내의 위태로운 밤 산책
■ 강남 스토리
강남스토리/최재원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부터 한국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에 이르기까지 문학 속 ‘산책’은 지성인의 낭만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최재원 시인은 첫 장편소설 <강남 스토리>에서 이 낭만적인 산책을 기발하게 뒤틀어버린다. 새벽 강남거리에서 타인을 훔쳐보고 통제하려는 미치광이의 기괴하고 오만한 걷기로 말이다. 소설은 의문의 강남대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한강철의 위태로운 밤 산책길로 독자를 안내한다.
한강철은 세상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지독한 통제광이다. 잠들지 못하는 그에게 조용한 새벽의 강남 거리를 걷는 일은 최고의 오락이다. 그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민낯을 관찰하며, 스스로 신이라도 된 듯 타인을 멋대로 판단하고 혐오하며 자신만의 오만한 세계를 만든다.
그러나 그의 산책은 늘 같은 자리에 수직으로 똑바로 서 있는 한 부랑자를 마주치며 무너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완벽한 차렷 자세’의 부랑자는 한강철이 자기 뜻대로 해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다. 한강철은 그 완벽함에 압도되어 강박적으로 집착하다가, 결국 스스로 쌓아 올려둔 통제의 세계를 깨부수고 파멸로 치달아 간다.
소설은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의 시점과 죽은 작가의 유고를 정리하는 편집자의 글이 주인공의 독백을 앞뒤로 감싸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다. 서로의 시선이 미묘하게 어긋나며 생기는 틈새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긴장감을 높인다. 타인을 판단하고 혐오하던 인물이 끝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문제작이다. 최재원 지음/민음사/208쪽/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