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뉴삼성’ 방정식은 AI [비즈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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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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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일 日 반도체 패키징硏 방문
현지 소부장들과 협력 기반 주목
취임 4주년 때 RX사업추진실서
로봇기술 점검하고 사업화 독려
사내 AI교육·R&D 투자도 가속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삼성전자가 역사적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시선은 눈앞의 실적보다는 그 뒤에 올 미래를 향해 있다. 재계에서는 지금의 호황에 안주하기보다 향후 10년, 나아가 20년의 삼성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회장 취임 4주년을 맞아 서울 우면동의 로봇 연구 현장을 찾았다. 또 삼성전자 창립 57주년인 지난 1일에는 일본 요코하마의 반도체 첨단 패키징 연구소로 향했다. 삼성전자가 역사적 호실적을 기록하며 국내외의 주목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받고 있지만, 취임 기념식도 창립 기념 메시지도 없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현장 행보를 두고 시장에서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사적 호황 누리는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지금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 3분기 매출 195조 3000억 원, 영업이익 107조 4000억 원을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폭발적인 수요에 힘입어 4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갈아 치웠고, 분기 영업이익 100조 원이라는 새로운 기록까지 세웠다. 이 회장이 지난 4년 간 마주했던 반도체 불황과 기술 주도권 논란을 떠올리면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삼성전자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216조 4000억 원, 123조 3000억 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한 번 역사를 새로 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시선은 현재의 영광보다는 미래의 연구실로 향하고 있다. 3분기 전체 영업이익 107조 4000억 원 가운데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이 벌어들인 돈은 106조 5000억 원이다. 반면 스마트폰과 가전 등을 맡은 DX부문은 80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역대 최대 실적이 오히려 반도체 의존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셈인데 지금의 호황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최고의 실적도 영원한 안전판이 될 수 없다는 위기가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 삼성전자의 지난 4년은 성공을 확인하는 시간인 동시에 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이었다. 2023년 반도체 사업은 연간 14조 88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급팽창하는 사이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이 회장은 투자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6세대 HBM인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했다고 발표했다. 또 3분기에는 HBM4 매출이 직전 분기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세대 제품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이다.

■반도체와 로봇에서 찾는 미래 먹거리

이 회장이 지난 1일 일본에서 현장경영에 나선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부터 5년 간 400억 엔(한화 약 3500억 원)을 투자해 일본 내 연구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어드밴스드 패키지 랩(APL)’은 첨단 반도체 패키지에 필요한 소재·공정 등 요소 기술을 개발·검증하는 조직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제조 역량과 일본의 우수한 소재·부품·장비 기술 생태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APL은 향후 웨이퍼 본딩부터 유리기판 등 다양한 차세대 공정·소재 기술 개발은 물론, 인공지능(AI) 시대에 요구되는 저전력·고성능 반도체 양산을 위한 고성능 패키징 뉴 아키텍처 개발까지 역할 확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첨단 패키징 기술은 AI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과거 반도체 경쟁이 얼마나 미세한 회로를 만드느냐에 집중됐다면, AI 시대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 등 서로 다른 칩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이 일본에 주목한 이유도 분명해 보인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일본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현지 연구 인력을 삼성의 메모리·파운드리 기술에 연결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특히 요코하마는 도쿄에 인접한 대도시로 우수 대학과 연구기관이 다수 위치해 전문 연구인력 확보에 유리하고, 첨단 패키징 관련 소재·장비 기업이 집적돼 있어 관련 기업과의 기술 협력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다. 이 회장이 개소 두 달 만에 현장을 찾은 것은 반도체 초호황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기술의 토대를 다지는 데 힘을 싣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취임 4주년 당일의 선택은 더욱 상징적이다. 이 회장은 별도 행사를 마련하는 대신 서울R&D캠퍼스의 RX사업추진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팔과 손으로 정교한 동작을 수행하는 기술을 점검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7월 대표이사 직속으로 신설한 RX사업추진실은 흩어져 있던 로봇 개발 역량을 모아 기술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추진하는 조직이다. 반도체가 현재 삼성의 수익을 책임진다면, 로봇은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은 거대한 시장에 도전하는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구상은 단순히 사람처럼 움직이는 기계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삼성은 2024년 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며 로봇 기술의 기반을 다졌다. 구미 사업장에는 로봇을 학습시키는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하기로 했고, 제조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해 산업용에서 서비스·가정용으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전략이다. 2030년까지 국내외 생산기지를 AI 자율공장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거대한 제조 현장 자체를 미래 로봇의 시험장이자 경쟁력의 원천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뉴삼성의 방향 결국 ‘AI’

이 회장이 반도체와 로봇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AI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산업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로봇 등 새로운 산업에서 성장 기회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력을 미래 사업에 투입해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를 다변화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의 미래 투자는 반도체와 로봇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지난해 유럽 공조업체 플랙트그룹을 인수하며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냉각·공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ZF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사업 인수 계약도 체결했다. AI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존 사업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자동차, 로봇 등 AI 기술이 적용되는 산업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의 변화는 공장과 연구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달 31일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단 50여명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와 만나 ‘AI가 바꿀 다음 10년, 기업의 선택’을 논의했다. 삼성은 경영진부터 생성형 AI를 직접 익히는 교육을 확대하고 내년 2월까지 전 임직원 대상 AI 교육을 마칠 계획이다. AI를 잘 만드는 회사에서 AI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로도 변화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미래 기술의 경쟁은 제품 뿐 아니라 의사 결정의 속도와 조직문화에서도 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호황기에 투자를 늦추지 않는 전략도 주목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3분기 한 분기에만 연구개발비 14조 4000억 원을 투입했고, 올해 연간 시설투자로 84조 4000억 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을 앞둔 2022년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의 메시지가 4년이 지난 지금 미래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로봇 사업의 상용화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 강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반도체 불황과 기술 경쟁력 논란 속에서 보낸 취임 후 첫 4년이 위기를 극복하고 실적 반등의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성과를 새로운 산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역사적 호황을 맞은 지금, 이 회장의 다음 10년을 향한 승부도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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