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계사년(癸巳年)-'흑사의 해' 띠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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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감 이미지부터 불사의 상징까지, 나는 누굴까?

그림=안창수

'이쯤 되면 바뀔 법도 한데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지겹지도 않은 걸까.' 2013년이 다가오자 저의 한탄이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작년 이맘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네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사람들은 60년마다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가요. 흑룡의 해에 맞춰 아이를 낳겠다고 출산 계획을 세웠고, 지지난해 연말이 출산 예정일이던 산모는 출산일을 조정하기도 했죠. 신문에서 떠들썩하더라고요. 흑룡의 해에 결혼하면 잘 산다고 해서 결혼도 많이 했어요.


설화서 악역 도맡아…허물 벗는 재생의 아이콘도

그런데 올해는 어떤가요. 뱀의 해라고 해서 반기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제가 여전히 징그럽고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인지, 2013년 뱀의 해를 맞아 이벤트를 여는 업체도 드물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용의 해와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올해 저의 해인 계사년(癸巳年)의 계(癸)도 2012년 임진년(壬辰年)의 임(壬)자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을 뜻합니다. 2013년은 검은 뱀, 흑사의 해란 말이죠. 흑룡의 해와 다른 건 단지 용이 아니고 뱀이라는 것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렇게 신문에 띠 풀이 코너라도 있어서. 1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기회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나마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해서 저 자신을 알리는 수밖에. 저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할까 합니다.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외모라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저를 위험하고 징그러운 존재로 생각하는 데에는 다 외모의 영향이 크죠. 우선,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눈. 토끼나 강아지처럼 귀엽고 동그란 눈이 아니라 쭉 찢어져 사납게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매가 비호감입니다. 그리고 여우나 양처럼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털이 아니라 미끈하고 축축한, 비늘로 갈라진 피부를 갖고 있어요. 거기다 두 갈래로 갈라져 무서운 독을 품고 허공을 날름거리는 혓바닥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죠. 다리도 없어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기다란 몸뚱이도 혐오감을 일으키지요. 이 외모 때문에 저는 항상 악역을 맡아서 했어요. 마을을 풍비박산으로 만들고 농사를 망치거나, 아니면 처녀나 아기를 잡아먹는 그런 나쁜 역할 말이죠. 오늘날 외모지상주의를 말하는 사람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 오랜 옛날부터 그렇게 외모로 차별을 받아 왔어요, 흑흑.

그래서인지 한국의 액막이 풍습 중에서는 저와 관계된 것이 있어요. 정월의 첫 번째 뱀 날인 상사일(上巳日)에는 남녀 모두 머리를 빗거나 깎지 않았다고 해요. 만일 머리를 빗거나 깎으면 그해에 뱀이 집 안에 들어와 화를 입는다고 생각했대요. 시커멓고 기다란 머리카락이 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겠죠? 이날에는 또 빨래나 바느질도 하지 않고, 땔나무도 옮겨 놓지 않고, 먼 길을 떠나는 일도 하지 않았대요. 그 사이에 제가 들어올까 봐 그랬다나요.

또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상사일에 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뱀 입춘문을 써 붙였다네요. 혹시 '뱀 지지기'라고 들어 보셨나요? 뱀 구멍에 연기를 불어넣는 걸 말하는 건데요. 긴 나무 끝에 머리카락이나 솜뭉치를 달아매고 불을 붙여 뱀 구멍에 대면 연기가 구멍으로 들어가서 뱀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네요.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서글픕니다.

그래도 스위스나 독일에서는 꽤 대접을 받았어요. 제가 집에 사는 것을 기뻐했고, 식사나 우유를 줘서 키우기도 했어요. 뱀은 인간에게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알려 주고, 쥐의 피해나 화재 및 낙뢰에서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죠. 저를 죽이면 집에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을 정도였는데, 너무 대접이 다르지 않나요? 에잇, 이참에 유럽에 이민이나 갈까 보네요.

그래도 여성들은 꽤 많이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성경에도 기록된 저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다들 아시죠? 제가 이브라는 인류 최초의 여성에게 선악과 열매를 따 먹게 했잖아요. 그래서 이브와 그녀의 짝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지만요. 이때의 사건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교활함의 상징으로 보기 시작했죠. 그래도 이브를 비롯한 여성 분들은 저에게서 호기심, 유혹이란 상징을 읽어 냈던 것 같아요. 호기심과 유혹. 매력적이지 않나요? 여인의 치명적인 매력을 제가 가진 독에 비유하기도 하고요. 명품 보석업체에서 저를 모티브로 한 장신구를 선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겠죠. 1962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손목에 찬 팔찌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죠. 뱀의 눈은 에메랄드로, 머리는 다이아몬드로 장식해 제가 주는 차가우면서도 강렬한 매력을 한껏 살렸답니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미남 배우에도 뱀띠가 많아요. 소지섭, 원빈, 지성이 대표적이죠.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네요. 김희선과 같은 원조 얼짱뿐만 아니라 제시카, 유리, 태연, 효연 등 소녀시대 멤버에도 뱀띠가 많죠.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싸이도 뱀띠에요. 아, 싸이는 미남이라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세계 1위니까 넣어 줬어요. 뱀띠에 미남미녀가 많다는 것은 당사주에도 나와 있어요. 조선 후기부터 민간에 크게 유행했다는 책인데요, 뱀띠는 '용모가 단정하고 학업과 예능에 능하며 문무를 겸비했다'고 쓰여 있었답니다.

서양에서는 좀 대접이 달랐어요. 서양에서 전 '치료의 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스클레피오스란 의술의 신이 등장해요. 아폴론의 아들이지요.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 실력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죽은 사람까지 살릴 정도였다고 하네요.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에는 뱀 한 마리가 몸을 감고 있어요. 이 지팡이는 의료와 약술의 상징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된답니다. UN 세계보건기구(WHO)의 상징도 이 지팡이에요. 뱀 한 마리가 생생하게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지요. 가끔씩 뱀 두 마리가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문양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건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니라 헤르메스의 지팡이라고 하네요. 헤르메스는 제우스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죠. 사람을 살리는 의술과 정 반대의 의미죠? 같은 뱀이라도 한 마리냐, 두 마리냐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니 재미있어요.

제가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인 건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18세기 강원도 삼척에서는 한 효자에게 파란 뱀이 나타나 노부의 병을 낫게 해 줬다고 하네요. 아직도 제가 비싼 보약 역할을 하잖아요? 예로부터 노쇠한 몸에 원기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명약으로 여겨져 요즘도 저를 잡아먹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저를 혐오스러워 하고 피하고 싶어 하면서도 저를 또 몸에 좋다고 잡아먹다니,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그런데 제가 왜 불사와 재생의 상징이 됐냐 하면요, 바로 겨울잠을 자기 때문이에요.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울 한 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고, 또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허물을 벗고 성장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허물을 벗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 죽음에서 재생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으로 보였나 봐요. 그래서 정력의 상징이 되기도 했고요. 정력뿐만 아니라, 민간의료에서 약으로도 많이 쓰였어요.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하강작용을 하며,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 일체에 사용된다고 알려졌어요. 제가 벗은 허물 또한 중요한 약재로 쓰였어요. 뱀 허물이 상처의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이 나오지 않을 때도, 그리고 경풍(驚風)에도 쓰인다고 나와 있어요. 이상한 사이비 의술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 같이 권위 있는 책에 나와 있었다니까요.

허물을 벗는 저의 습성은 유명한 철학자에게도 영감을 줄 정도랍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독일의 그 유명한 철학자 아시죠?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사람이 그랬대요.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결국 죽고 만다. 인간도 완전히 이와 같다'고 말에요. 낡은 사고 속에 갇혀 있으면 결국 죽고 만다는 의미에요.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겨우내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뱀처럼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안 그래도 이제 겨울이고, 계사년 뱀의 해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겨울 동안 어떻게 성장해 새봄을 맞을 생각이신가요? 우리 다 함께 허물을 벗고 2013년 다가올 새봄을 맞이해 봐요.

참, 그런데 이 정도면 저도 나름 괜찮은 존재 아닌가요? 이제부터라도 제 외모나 과거의 전설, 평판만 따지지 말고. 예뻐하고 사랑해 주세요.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

안창수 화백은 부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30년가량 전문 금융인으로 활동하다 퇴임한 뒤 동양화가로 변신했다. 중국 항저우의 중국미술대학,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그림 유학을 했다. 중국과 일본의 각종 서화대전에서 입상했고, 개인전도 세 차례 열었다. 현재 중화미술가협회 명예 이사, 일본전국수묵화 미술협회 회원으로 있으며, 고향인 경남 양산에 안창수동양미술연구소를 만들어 작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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