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등학교 전면 시행 6개월] 자리 잡는 서술형 평가, 아이들 '생각'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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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토성초등 학생들이 문제의 답을 적기 위해 사전을 찾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9월 초등학교 객관식 평가를 폐지하고 서술형 평가를 실시해온 시범 학교다. 토성초등 제공

올해 초 부산에서 '교실 혁명'이 시작됐다. 전국 최초로 모든 초등학교에서 객관식 평가가 폐지된 것이다. 대신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서술형 평가를 도입했다. 정답을 주입하는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한 학기 동안 운영한 결과,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부족한 점도 함께 짚어본다.

학생들 암기식 사고 틀 깨기 시작
토론 중심 참여형 수업 늘며
학생 장단점·적성 파악 효과도

문제 출제·평가 공정성 '숙제'
체계적 자료 보급·연수 등 추진
교사 업무 경감 방안도 찾아야

■틀을 깨는 아이들

서술형 평가는 무엇보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학생들은 더 이상 4~5개의 보기 중 답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문제의 답을 직접 적거나 문장으로 서술하는 중이다. 생각의 폭을 넓힐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틀을 깨기 시작했다. 세계 책의 날이던 올 4월 23일 부산 서구 토성초등의 한 학생은 "도서관을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화장실이라고 답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도서관에서 궁금한 점을 알게 돼 시원하다는 것이다. 문제를 바꿔 정답을 적은 사례도 있었다. 한 학생은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경험을 서술하라'는 문제를 '콩닥콩닥했던 경험'으로 바꿔버렸다. 마트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부사를 바꾼 것이다. 물론 자신의 답도 그에 맞춰서 썼다.

수업 방식도 바뀌고 있다. 교사들은 토의·토론을 바탕으로 한 학생 참여형 수업을 늘리는 중이다. 독서도 활발히 이뤄진다. 토성초등 박미순 교감은 "평가 방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수업도 변하기 시작했다"며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끌어내 문장으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토론과 독서의 비중을 높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술형 평가로 학생의 장단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효과도 있었다. 아이가 답안으로 적은 문장을 통해 잘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상세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객관식 평가는 정답과 점수만 있어서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정보가 적었다"며 "서술형 평가에서는 추가 질문을 통해 아이의 학습 수준을 면밀히 파악하게 됐고, 아이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아이의 적성을 찾고 성장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교사는 학생들이 좀 더 상세히 서술하는 과목을 분석할 수 있다. 답안의 깊이가 심화하는 분야도 알아챌 수 있다. 아이들을 점수로만 비교하는 객관식 평가로는 아이들의 잠재력까지 찾기는 어렵다.

■문제 출제 한계, 평가에 주관성 개입

초등학교 교사들은 변화의 방향은 맞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많은 교사들이 문제 출제에 어려움을 느낀다. 교사 A 씨는 "문제를 직접 내려고 해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문제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밝혔다. 색다르고 다양한 문제를 내려면 부산시교육청이 제공한 우수 예시로는 한계가 있다. 교과서 내용이나 사진, 자료에 맞춰 문제를 내는 경우가 많아 '암기형 서술 평가'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사 B 씨는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답안이 나올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보완해야 한다"며 "서술형 평가의 목적이 선별과 서열화가 아니라 성장과 자극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답안 평가에 대한 부담도 크다. 서술형 답안 평가는 주관적인 여지가 있고, 기준에 따라 달라져 공정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교사 C 씨는 "기준을 세분화해 평가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답안이 천차만별이었다"며 "어느 정도는 주관적으로 답안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반대로 교사 B 씨는 "아이들의 대답이 너무 비슷해서 문제 출제와 평가에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서술형 평가는 주관적일 수 있어 비판 받을 수 있다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문제 예시 늘리고 전문성 키워"

부산시교육청은 과도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 중이다. 지난해 9월부터 객관식 평가를 폐지한 시범학교 10곳과 올 3월 지정한 선도학교 10곳을 분석해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다.

먼저 문제 출제와 평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 내년 2월에 서술형 평가 요소를 체계화한 자료를 보급할 예정이다. 부산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안재홍 장학사는 "문제 예시를 많이 늘리고 평가 문항이나 채점 기준 등을 체계화한 자료를 학교에 보급할 예정"이라며 "개별적으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희망 교사에게 연수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암기형 서술 평가가 되지 않도록 수업의 틀도 바꿔나갈 예정이다. 부산시교육청 김숙정 유초등교육과장은 "토론·토의뿐만 아니라 실험이나 탐구 활동을 늘리는 방향으로 유도하겠다"며 "장기적으로 답을 외우기 힘든 창의적인 문제가 나올 만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교사 업무를 줄일 방안도 찾는다. 수업에 집중하기에는 각종 행정 업무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안재홍 장학사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위한 수업과 평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공문을 최대한 줄이고 각종 행정 업무를 덜 수 있는 방안을 타 부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우영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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