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로 돌아온 전도연, 묵직한 아픔 ‘세월호’… 그럼에도 힘 내자고 말하는 영화
한 여자가 터벅터벅 길을 걷는다. 화려한 조명이 늘어선 거리를 건조한 낯빛으로 혼자 걸어간다.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듯하다. 툭 건들면 이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아픈 눈빛이다. 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의 배우 전도연의 모습이다. 가만히 걸을 뿐인데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먹먹하다. 극 중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을 연기한 그의 깊은 감정 연기 덕분이다. 전도연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3일 개봉… 아들 잃은 엄마 ‘순남’ 역할
“대본 보고 너무 많이 울어 연기 걱정
조심스러웠지만 안 했으면 후회했을 것
촬영 마치고 진도 팽목항 다녀오기도
이 작품으로 배운 것 잊지 않겠다”
영화 ‘생일’서 유가족 연기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때는 2014년 4월 16일, 순남의 아들 수호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 후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순남은 여전히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들이 떠난 뒤 순남의 시간도 멈췄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를 보고, 언제라도 돌아와 입을 수 있게 계절에 맞춰 새 옷을 준비한다.
전도연이 그린 순남은 너무 아프다. 삶의 전부였던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지만 살아가야 한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 딸이 있다. 감정을 꾹꾹 눌러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는다. 한 번씩 짙은 그리움이 찾아올 땐 목 놓아 엉엉 우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전도연은 “전작 ‘밀양’에서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을 한 적이 있다”며 “당시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 다시는 비슷한 캐릭터를 안 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단다. 그는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 너무 많이 울어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느껴 꼭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에 출연해 유가족분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보니 ‘밀양’ 때보다도 캐릭터의 아픔이 느껴지더라고요. 한 발자국 떨어져 캐릭터의 감정을 바라보려고 노력했죠. 산다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이에요. 이 영화를 안 했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아요.”
“촬영 마친 뒤 끙끙 앓았다”
스크린 속 전도연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려온다. 연기 경력 28년의 베테랑 배우이지만 감정을 풀어내는 게 쉽지 않았단다. 그는 “순남을 보고 넋 없이 떠다니는 영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들을 잃은 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다니는 모습이 정말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숱한 감정연기를 해 왔지만 이번만큼 고된 적은 없었다고. 절제하거나 터뜨려야 하는 감정 모두 쉽지 않았단다. 촬영을 마친 뒤에는 여러 날 앓기도 했다. 전도연은 “잠을 잘 때도 끙끙 앓으면서 잤다”면서 “감정적으로 아팠던 게 체력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 같이 아프자’고 하는 작품이 아니라 ‘아프지만 힘을 내서 잘 살자’고 하는 영화”라고 힘줘 말했다.
극 중 남편 정일을 연기한 설경구와 호흡도 인상적이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지난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후 18년 만에 재회했다. 그는 “작품이 어렵고 힘들었는데 설경구 씨에게 많이 기댔다”며 “친정 오빠 같은 느낌이라 힘들 때 의지하며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영화의 중요 장면인 ‘생일 모임’도 언급했다. 전도연은 “이틀 동안 롱테이크로 종일 계속 찍은 장면이다”며 “슬픔을 나눈다는 것 자체로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작품을 하며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 “생일 모임 장면을 촬영할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눈물이 멈췄다가 또다시 흐르곤 했죠. 다 끝난 뒤에는 이종언 감독님과 함께 진도 팽목항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느끼고 배운 걸 잊지 않을 거예요.”
남유정 기자 bstoda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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