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러시아에 답 있다] 2. 포디야폴스키 부두대상지 현장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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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서 초대형 선박 이틀 거리… ‘수소 생산기지’ 최적지 부상

KMI 이성우 본부장이 포디야폴스키 항만 배후 철도 운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KMI 이성우 본부장이 포디야폴스키 항만 배후 철도 운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지난해 11월 극동러시아 포디야폴스키 항만 대상지 동쪽에선 철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당시 공정이 80%였다. 약 1년 만인 지난달 찾아간 현장에서는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와 빈 화차가 부지런히 복선 선로 위를 오갔다. 왕복 6차로 국도 공사도 부지런히 진행 중이었다. 일 처리 더디기로 유명한 러시아에서 이런 속도는 전에 없던 일이라고 동행한 현지 전문가들은 말했다.

석탄 실은 화물열차 오가고

왕복 6차로 국도 공사 한창

“유례 없이 빠른 개발 속도”

자국 가스 수출 원하는 러시아

수출 액화시설 건설 땐 비용 부담

중동 LNG보다 50% 이상 저렴

수산물·천연가스 처리 부두 검토

“선사·업체, 개발부터 참여 필요”

■프리모리예1 거점항만 가능성 충분

포디야폴스키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 가운데에 있다. 배후 철도가 우수리스크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된다. 8000만 인구에다 방대한 공업단지와 비옥한 곡창지대를 보유한 중국 동북 2성(헤이룽장·지린)의 화물을 끌어들이기에도 좋다.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국제운송회랑 프로젝트인 ‘프리모리예’ 사업 중 첫 노선(P-1)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수이펀허, 러시아 포그라치니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항을 잇는 노선이다. 중국 지린성 창춘과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연결하는 프리모리예2(P-2) 노선보다 러시아 영역이 더 넓다. 이 때문에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 구축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해양수산부와 국내 대기업이 타당성을 검토했다 출구전략을 찾는 슬라비얀카항, 이렇다 할 진전 없이 무산 분위기로 가는 자루비노항 모두 P-2노선이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에서 북방사업을 할 때 향후 북한과의 협력을 염두에 두고 가급적 북한 가까이에서 개발 사업을 하려고 P-2노선을 우선시했는데 P-1과 P-2의 인프라 구축 속도를 비교하자면 러시아의 방침은 P-1노선 우선 개발이 확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P-2노선 개발 속도가 느린 이유로 중국의 동해안 진출로를 막아 극동러시아 항만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동행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종합정책연구본부장은 포디야폴스키 부두 개발 대상지를 보고 “수심도 20m가량으로 깊고, 방파제 없이도 일정한 파고를 유지할 수 있어 항만 조성 대상지로 우수한 입지로 보인다”며 “해안선을 접한 길이가 800m로 길지 않아 매립으로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부두로서 우수한 입지를 살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부두를 활용할 화주와 선사, 물류업체가 개발 단계부터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건설업체는 부두만 지어 놓고 빠지면 그만이지만, 앞으로 그 부두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결국 얼마나 많은 물동량이 처리되느냐 하는 것”이라며 “실제 물동량을 창출하는 주역인 화주나 선사, 물류업체가 이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참여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LNG와 농수산물·컨테이너 복합부두로

포디야폴스키 항만 대상지에 대해 극동투자수출지원청과 부지 소유법인은 수산물과 천연가스, 컨테이너를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부두를 검토하고 있었다. 컨테이너는 1개 선석 정도로만 조성하고, 수산물과 가스에 방점을 찍을 계획이었다. 수산물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러시아 측에 물었다. 부지 소유법인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생산된 수산물을 원물 그대로 해외에 수출하지 말고 국내에서 1차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인 뒤 수출하자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명태나 킹크랩 등의 어획물을 이 부두에 부려 1차 가공한 뒤 수출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스는?

러시아 가스공사인 가즈프롬(Gazprom)은 즈베즈다조선소와 주변 볼쇼이카멘 주민 거주지역까지 사할린 가스관(PNG)을 연결했는데, 약 10㎞ 남쪽인 포디야폴스키에 가스 수요가 접수되면 이 가스관 연결도 가즈프롬이 부담해 시공해 준다. 자국 가스 수출에 목말라하는 러시아는 수출용 액화시설을 짓겠다고 하면 기존 내수용 가스관보다 더 굵은 가스관을 매설해 준다. 액화시설 수요 법인 지분의 25% 이상을 외국인이 갖고 있으면 인프라 구축 비용을 러시아 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세계 최대 가스 수입업체인 한국가스공사(KOGAS)가 연간 LNG 100만t을 확보할 수 있으면 충분히 독자적으로 액화시설을 지어 운영할 만한 타산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KOGAS는 액화시설 기술 수준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포디야폴스키에서는 연간 200만t가량 생산 가능한 액화시설을 구상 중이다. 2020년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 규제로 선박 벙커링 시장에서 LNG 수요는 해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고, 러시아 LNG는 기존 중동산에 비해 50% 이상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부산항의 LNG벙커링 시장의 다양한 공급선 확보, 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관심을 가져 볼 만한 대목이다. 특히 수소경제 시대에 대비해 향후에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생산하는 시설을 건설할 수도 있다. 부산항에서 초대형 선박으로도 이틀 만에 도착할 거리인 극동러시아에 수소 생산기지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일본은 갈탄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시설을 호주에 건설하고 있다.

중국 동북2성과 극동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콩, 옥수수, 밀 등의 곡물을 처리할 부두에 대한 수요도 높다. 연해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국내 한 대기업은 최근 러시아 극동투자수출지원청과 추가 농지 운영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극동러시아 농지에서 생산되는 물량은 복잡한 블라디보스토크항 등에 분산 처리돼 물류비 부담이 크고, 중국 농산물은 훨씬 먼 서쪽 다롄항으로 빠져 나간다. 포화상태인 극동러시아 부두들의 장치장 사용료 등 하역·보관료는 부산항의 4~5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KMI 이성우 본부장은 “LNG와 농수산물 부두는 물량 확보 가능성 면에서 타당성이 높고, 컨테이너 부두는 안벽 길이가 길지 않아 3000~5000TEU 선박 규모에 적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이 기사 취재에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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