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구토 위급 상황, 13시간 배 안에서 무슨 일이…해양대 실습생 사망 미스터리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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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해외 승선실습 도중 열사병 증세로 사망한 한국해양대생 A 씨가 탑승한 팬오션의 선샤인호. A 씨는 실습기관사 자격으로 이 배의 기관실에서 일을 돕다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쉬핑가제트 제공 10일 해외 승선실습 도중 열사병 증세로 사망한 한국해양대생 A 씨가 탑승한 팬오션의 선샤인호. A 씨는 실습기관사 자격으로 이 배의 기관실에서 일을 돕다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쉬핑가제트 제공

대학을 졸업하면 해양경찰이 될 거라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가족은 절망했다. 190cm의 거구에 태권도·검도·유도 유단자였던 듬직한 아들이다. 그래서 해외 승선실습이라고 해도 큰 걱정 없이 떠나보냈지만, 배에 오른 지 5일 만에 아들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8일 밤까지만 하더라도 웃으며 카톡을 보내던 아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갔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은 숨을 거두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번에 산 가습기 오늘 사용한다’며 자랑했다. 그러나 그 후 어머니가 보낸 답장을 아직도 아들은 읽지 못하고 있다.


선사 “열사병” 밝히고 있지만

심정지 가까운 절박한 상황서

헬기 아닌 소형보트 이송도 의문

유족 “누구보다 건장했던 청년

반드시 진상 밝혀 책임 물어야”


■출항 4일 만에 구토와 고열

한국해양대 3학년 A(21) 씨가 인도네시아 바탐에서 팬오션 사의 ‘선샤인호’에 몸을 실은 건 지난 5일 오전 2시. 당시 선샤인호에는 실습생 2명을 포함해 선원 22명이 타고 있었다.

출항 4일 만인 지난 9일(현지시간) 오전 9시 30분께 고열과 구토 등의 이상 증세를 보였다. 해양수산부와 팬오션 등에 따르면 A 씨는 실습 기관사 자격으로 기관실 일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실은 장기간 근무할 땐 난청이 올 정도로 소음이 심하고 실내 온도 또한 50~60도를 넘나들어 근무 환경이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A 씨 같은 실습 선원은 학생 신분이므로 선원법에 따라 업무 참관 정도에 그쳐야 하지만, 한국해양대 졸업생들은 ‘실제로 승선실습 중 실습생은 배 안의 잡다한 심부름을 도맡는 머슴이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A 씨가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일을 하다 쓰러졌을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기관실에는 장기간 열 노출로 인한 열사병 등을 막기 위해 에어컨과 음료 등을 마련한 컨트롤러룸이 갖춰져 있다. 기관실과 컨트롤러룸을 오가며 신체 기능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분명 컨트롤러룸이 있고, 쉴 수 있었을 텐데 A 씨가 탈수가 올 때까지 방치됐는지에 대한 해답도 선사 측은 내놓지 않고 있다.

해양경찰을 꿈꿀 정도로 일반인보다 신체조건이 더 뛰어났던 A 씨다. 이 때문에 유족과 동료들은 실습생이라는 신분과 수직적인 선박 내 분위기 때문에 A 씨가 열사병 증세를 밝히지 못했던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동아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영진 교수는 “열사병 증상이 오면 최대한 빨리 체온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 임계점을 넘겨 버리면 생명을 잃는다. 열심히 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 중요한 시점을 넘겨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도 선사 측은 ‘매뉴얼에 따라 응급조치를 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A 씨는 책임감은 강했지만 수줍음이 많았던 성격으로 알려졌다. A 씨의 대학 동기들은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성격에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여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몸에 이상이 있어도 바로바로 말하고 그럴 성격은 아니다. 승선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 적응도 해야 하고 기관실 장비도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열심히 해보려다가 이런 사고가 난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생사 헤매는데 헬기 못 구해 보트로

A 씨가 거듭 증상을 호소하자 팬오션 측은 9일 낮 12시께 A 씨의 하선을 결정했다. 그리고 오후 1시 48분 가족에게 “A 씨가 아파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연락했다. 이후 A 씨의 아버지는 선사 측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들의 상황을 체크했다.

그러나 A 씨의 가족들은 한국 시간으로 이날 오후 6시께 선장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A 씨의 체온이 40도 가까이 오르긴 했지만, 혈압이나 맥박은 모두 정상 수치라는 게 선장의 설명이었다. 선샤인호 선장은 가족들에게 “선장의 경험을 빗대 봤을 때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현지시간으로 오후 10시면 병원에 도착할 것이라던 선사 측의 설명과 달리 병원으로 옮겨지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병색이 깊었던 A 씨는 예인선과 보트를 갈아타며 10일 0시 40분에서야 육지에 도착했다. 이후 구급차로 옮겨 탔지만 메단 페르타미나 병원까지는 1시간이 소요됐으며, A 씨는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뒤인 이날 오전 2시 6분께 끝내 숨을 거뒀다.

A 씨의 아버지는 〈부산일보〉와의 통화에서 초동 조처만 잘했더라도 아들이 살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의 아버지는 헬기를 태우지 못한 점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았으며, A 씨를 태우러 온 보트에 현지 의사를 태우기로 했으나 태우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선사인 팬오션 측은 헬기를 요청했지만, 헬기 수배가 쉽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팬오션 관계자는 “헬기를 요청했지만, 현지 상황상 헬기 수배가 쉽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해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유리·이상배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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