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래도 예술은 ‘콘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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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공연예술팀장

심야에 집에서 조성진의 콘서트를 보다니!

지난 일요일 오후 11시 도이치 그라모폰 유튜브 채널에서 조성진의 온라인 공연이 펼쳐졌다. 조성진이 40여 분간 새 앨범 ‘방랑자’ 수록곡을 포함해 3곡을 연주하는 동안 최고 4만 8000명의 ‘온라인 관객’이 몰려들었다. 공연시간을 깜빡 잊고 있다 뒤늦게 들어가 조성진의 수려한 연주를 감상했다. 이 공연을 놓치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영상이 72시간 동안 공개돼 다행이었다. 지난해 통영서 열린 ‘조성진과 친구들’ 공연은 49초 만에 매진됐다. 기자의 더딘 클릭질로는 꿈도 못 꿀 공연을 집에서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코로나로 온라인 전시·공연 봇물
문화예술계도 ‘언택트’ 확산 전망
현장에서 더 커지는 예술의 감동
공연 재개 소식에 ‘봄’ 부활 기대


월요일에는 LG아트센터가 세계적인 공연의 디지털 스테이지 ‘CoM On(CoMPAS Online)’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고 싶다 생각만 하다 놓친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와 아크람 칸이 안무한 ‘지젤’ 등의 공연이 서비스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한동안 매주 금요일 안방에서 세계적 공연으로 ‘예술 불금’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문화예술계 각 분야에서 온라인으로 관람객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부산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미술관들은 온라인 전시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순히 작품만 보여주는 것을 넘어 VR 서비스, 학예사가 진행하는 전시 투어,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내 손안의 미술관’이 호응을 받고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학예사가 접속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전시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해 해외 언론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부산을 비롯한 각 지자체 소속 예술단의 온라인 공연도 봇물을 이룬다. 서울시향은 VR 기술을 이용해 온라인 개학 지원용 음악 교육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무용 공연의 B컷 영상을 공개하거나, 현대 무용 관람과 홈트레이닝 배우기를 연계하는 등 색다른 아이디어도 넘친다. 화제의 연극 공연실황 녹화 영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오프라인 현장으로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온라인으로 전시나 공연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은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다. 코로나 사태로 달라진 점은 일부가 아닌 작품 전체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안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보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상영한 ‘라인의 황금’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2011년 런던 로열앨버트홀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까지 볼 수 있으니 가히 시공간을 넘어선 예술작품과의 조우가 가능해졌다.

멈춰버린 문화예술 시장을 구동시키는 차원에서 시작한 온라인 전시·공연 서비스가 일정 성과를 내고, 자체적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디지털 미술관의 정착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아예 온라인 맞춤형 공연이라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이 선보인 ‘수퍼엠-비욘드 더 퓨처’가 예이다. 이 세계 최초의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를 109개국 7만 5000명이 동시에 관람했다.

향후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언택트(비대면) 서비스’가 영향력을 더 키워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예술 체험의 무대를 온라인으로까지 확장해서 문화예술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대신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한 소규모 예술 현장은 상대적으로 더 위축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남는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온라인이 예술의 감동을 널리 전달하고, 오프라인 현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이를 통해 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 한 설치미술 전시장을 찾았다. 어두운 방안에 설치된 LED 전광판에서 쏟아지는 검은 전선의 폭포 위를 빛으로 만든 나비 이미지가 날아다녔다.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차분함, 슬픔이 마음 한 구석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참 좋았다. 한참 동안 작품 앞에 가만히 앉아 그 감동을 즐겼다. 예술 현장에만 존재하는 공기가 있다. 소극장에서 단 2명의 배우가 펼치는 연기에 압도된 느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바이올린 음색에 다같이 감탄사를 내뱉은 순간 등은 10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예약 관람제, 거리두기 좌석제 등으로 안전 조치를 갖춘 전시·공연 재개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예술가와 관람객이 현장에서 직접 만나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 ‘콘택트(대면)’로 더 풍성해진 문화예술의 봄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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