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 전한 행복 비결 “솔직하게 너를 마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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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작가의 작품 ‘파랑새’ ‘풍선’ ‘괜찮다 괜찮다’(위 사진부터). 맥화랑 제공

“솔직한 자신을 꺼내 놓을 때 진짜 행복이 온다. 행복해지는 과정을 만든다.”

10여 년 전 ‘금융맨’인 아버지는 아들이 미술 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내성적인 아들은 말도 못하고 속만 태웠다. 한 달 넘게 집 밖을 떠돌다가 돌아온 어느 날 꾹꾹 눌렀던 감정이 터졌다. 엉엉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샐러리맨들의 위태로운 서커스를 작품으로 표현하던 조각가 박진성이 ‘감정 표현’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다.

박진성, 맥화랑서 ‘아는 사람’전
아기 얼굴에 주름·수염 난 캐릭터
관객 경험에 따라 해석은 제각각
풍선 불기는 속내 드러냄의 은유
감정에 충실할 때 행복함을 표현

어른스러움을 내려놓고 자신을 끄집어내면 속에서 행복한 감정이 올라온다. 박 작가는 “느낀 대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해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동그란 머리에 어디선가 본 듯 친숙한 얼굴, 한 손에 들린 소주병과 살짝 붉어진 코. 귀여워서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한 이유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눈 때문이다. “전체를 무광으로 처리하고 마지막에 눈물만 반짝거리게 표현했다.”

박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그는 “보고 만든 얼굴이 아니다.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아기 얼굴에 주름과 수염을 넣어서 만든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냥 감정 표현에 충실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작가는 캐릭터의 표정을 만드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박 작가는 “울 듯 말 듯한 표정이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웃는 표정도 눈꼬리가 올라가고 내려가고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비치는 얼굴은 기뻐서 흘리는 눈물 같기도 하고 억지웃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기쁜 느낌으로 만들어도 보는 이가 슬프게 느낄 때도 있다. “관람객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 다르더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미술을 반대하던 박 작가의 아버지는 지금 아들의 열성 팬이 됐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맥화랑에서 박진성의 ‘아는 사람’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눈물을 넘어 풍선, 비눗방울, 파랑새 등으로 소재를 넓혔고 색과 기법에서도 더 풍부하고 확장된 감정 표현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박 작가는 “풍선을 ‘불어 내는 행위’를 통해 가슴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뒤 풍선 위에서 자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한 손에 타들어 가는 담배를 들고 분홍색 비눗방울을 부는 모습에서는 현실과 꿈이 교차한다. 파랑새 시리즈는 등장인물의 머리 위에 파랑새가 앉아 있다. 그런데도 죽은 새만 쓰다듬거나 빈 새장을 들고 파랑새를 찾는다. 가까이 존재하는 희망과 행복을 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얼굴을 가리고 우는 사람의 코끝에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다. 옆에서 그를 위로하는 회색의 인물은 또 다른 자신이다. ‘괜찮다 괜찮다’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박 작가가 ‘나도 가수다’에 출연한 임재범이 ‘여러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만들었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작품에서는 아기처럼 울고 있는 어른을 작은 아이가 든든하게 안아 준다. 아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상징한다. 험한 세상살이에 있어 최고의 동반자는 현대인이 마음속에 꼭꼭 숨겨 둔 ‘아는 사람’,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원래의 우리 자신이다. ▶박진성 ‘아는 사람’=6월 14일까지 맥화랑. 051-722-2201.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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