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모징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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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어렸을 적 어른들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언뜻 이해가 안 됐다. 그 반대여야 맞는 것이 아닐까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세월이 흐른 뒤 속담에 담긴 숨은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자식이 있으랴만, 이런 자식을 평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매를 드는 것은 아마도 귀한 자식일수록 좋게만 여겨 얼러 주기보다 잘못에 대해선 엄하게 다뤄야 더 바르고 낫게 자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지 싶다. 비슷한 의미의 구절이 영어 속담과 성경에도 있는 것을 보면 동서를 막론하고 자식에 관한 한 부모의 관점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오래전에 형성된 속담의 본래 뜻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지만, 시대가 바뀐 현대의 다양한 가족 구성이나 상황에는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특히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부모의 징계권을 인정했던 예전 사회 분위기는 최근 아동·청소년의 학대 논란과 부딪히면서 구시대의 잔재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도 이를 반영해 훈육을 빙자한 아동 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부모 등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을 민법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민법 915조에는 친권자가 양육자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징계권 삭제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후 62년 만이다.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또는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체벌이 아동 학대의 범죄라는 점을 부각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방책이다. 세계적으로도 1979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59개국이 부모의 자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징계권 유무와 자식의 훈육은 별개의 문제다. 물리적인 폭력 행사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자식이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타이르고, 가르치는 데 대한 부모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지점이다.

아동 학대가 범죄임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부모에게도 ‘올바르게 꾸중하는 법’과 관련한 교육 정보는 절실할 듯하다. 아무리 친구 같은 부모를 선호하는 사회라고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타일러야 할 경우는 수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천륜(天倫)’이라는 부모-자식 사이는 가장 친밀하면서도 또한 어려운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부모 되기는 쉬워도, 부모 노릇 하기는 어렵다는 옛말이 실감 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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