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야자’ 없는 나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세익 디지털콘텐츠팀장

주변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근 학교발 문자메시지 하나가 이야깃거리였다. 야간 자율학습, 이른바 ‘야자’가 주인공. 핵심 내용은 ‘야자는 의무적인 게 아니므로 오해 말고 학교에 말씀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학교는 교육청 지침에 따라 학생이 등교할 때만 조심스럽게 ‘자율 학습’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일부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해 논란이 좀 일자 이런 메시지를 발송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학교와 담임교사 눈치를 봐야 하는 학부모 입장에선 코로나19 사태 속 ‘강제 야자’로 여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가 부른 온라인 수업은 전국적으로 한동안 ‘야자’라는 말을 없애버렸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 속에서 버텨야 하는 아이들이 잠시 숨을 쉴 수 있었을 테니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불안했던 일부 학부모, 학생들이 창의적이게도 ‘온라인 야자’를 탄생시켰다는 웃지 못할 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국뽕’ 도취 콘텐츠 난무하는 대한민국
청년 자살·부동산 폭등… 경쟁 후유증 ‘1위’
코로나19 계기 사회 혁신 공감대 상승
시민혁명 수준 진정한 ‘뉴 노멀’ 원년 되길

학부모들 사이에는 가끔 가슴이 무너지는 소문이 소리 없이 퍼졌다가 사라진다. 어느 학교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건데, 대체로 학업과 관련된 듯했다. 민감한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상대적인 탓에 소문의 내용은 성적이 좋고 나쁘고를 구분하지 않았다.

언론 현장에서도 ‘자살’은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구급 출동을 나간 소방 당국도, 사인을 수사하는 경찰도, 학교를 담당하는 교육청도 청소년 자살 사건은 언론을 포함한 외부에 일절 노출하지 않는다. 2차 피해와 모방을 막자는 취지다. 그래서 확인할 길 없는 소문만 유령처럼 떠돌 뿐이다.

하지만 늘 의문은 남는다. 그리해서 비극적인 상황이 나아지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통계청은 지난 22일 대한민국 자살률이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며, 오히려 2년 연속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만명당 자살자 수 역시 OECD 국가 평균의 배를 넘어섰다.

그중 가장 암울한 지점은, 10대부터 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란 것이다. 지난해 30대 사망자의 39%, 20대 사망자의 51%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20대의 경우 전년에 비해 자살자 비중이 9.5%포인트나 상승해 절반을 넘어선 건 충격적이다. 또 10대 청소년 사망자의 37.5%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언론 등에 알려지지 않으니 먼 나라 얘기처럼 체감하지 못한다.

이들은 피할 수 없는 열등감 속에 겨우 10대를 버텼고, 낙오자 면하려고 비싼 등록금 내고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다. 이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분명 지옥 같은 취업난과 경제난, 희망을 품기 힘든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청년들이 스러지는데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비정상의 정상화’가 암세포처럼 퍼져 있다. 웬만한 살인 사건은 주목 받지 못하듯, 매일 이웃과 가족이 목숨을 끊는 비극에도 무덤덤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디지털 공간에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위 ‘국뽕’ 콘텐츠가 폭증하고 있다. ‘K-방역’ 성공 사례를 계기로 힘든 시기 스스로를 격려하고 자부심을 북돋우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거기에 도취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의 모순을 확인하고 더 나은 미래로 가는 방향 전환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각국의 역량과 민낯을 확인시킨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미래로 도약할 기회를 선사한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뉴 노멀’, 그러니까 새 삶의 기준은 우리 아이들이 서열과 경쟁 속에 스러지고, 벼랑 끝 청년들이 추락하는 걸 더이상 묵과하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다른 선진국처럼 야자 없는 세상에서, 일본이 남긴 군대식 학교에서 줄 세운 ‘상품’이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모조리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는 목적 없는 대학 진학으로 엄청난 자원만 소비하는 대학입시부터 폐지하고 교육의 새판을 짜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고졸이 부끄러운 경쟁 지상주의, 서열 따라 편가르며 차별하는 학벌 계급주의 속에선 아이들이 더이상 미래를 찾을 수 없어서다.

지금 정부와 국회, 정치의 모습에서 이런 혁명 수준의 실행을 기대하는 건 누가봐도 무리일지 모른다. ‘국뽕’ 크리에이터들의 말처럼, 믿을 수 있는 건 촛불혁명을 이루고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맞선 시민의 힘과 저력밖에 없어 보인다. 다음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핵심 공약에 이런 시민의 열망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도록, 올해가 ‘시민 교육혁명’의 원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u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