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 첫 문화헌장 선포, 시민 문화권 보장 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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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시민의 문화 주권을 강조한 문화헌장을 제정했다는 소식이 27일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문화헌장 제정은 아직은 드문 일이다. 2006년 문화관광부가 국가 차원의 문화헌장을 제정하기 위해 나섰지만 결국 민간 차원의 선언적 성격에 그치고 말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008년 충청북도가 문화헌장을 제정해 발표했지만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인천시가 제정 작업에 나섰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그만큼 부산시의 이번 문화헌장 제정은 국가 차원에서도 귀한 일이며, 특히 문화 불모지라 불릴 정도로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부산으로서는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경사이다.

기반 취약한 부산 문화에 반가운 선언
시, 법·제도적 조치 조속히 시행해야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문화 불모지라고는 하지만, 기실 부산 문화의 뿌리는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게 깊으면서도 독특한 이질성을 가진다. 해양교류 전진기지로서 우리나라 근대화의 물꼬를 틀었고,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피란민을 품었으며, 부마항쟁으로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이를 뭉뚱그리면 개방성, 포용성, 역동성으로 부산 문화의 뿌리를 정의할 수 있다. 그동안 부산시민은 그런 부산 문화의 향취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문화헌장은 부산시민이 문화를 향유하며 문화 주권을 실천하는 주체라고 선언했다. 이는 부산시민의 문화권리를 보장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문화헌장은 또 부산시민의 문화 권리를 실행해야 할 책무가 부산시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마침 지금 부산에선 ‘2020 부산인문연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의 인문학 단체 19곳이 연대해 올 12월 중순까지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적 접근을 위하여’라는 주제 아래 총 53회의 인문학 향연을 펼친다. 이 행사에서 주목할 점은 부산시민과 부산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부산발 세계 인문학 대회’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현재 부산 문화를 상징하는 해양과 영화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들이 그 좋은 예다. 문화헌장의 실천적 측면에서 ‘2020 부산인문연대 프로젝트’는 좋은 시험 대상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남은 과제는 문화헌장의 정신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이다. 수년 전 부산문화재단 예산 삭감 논란이나 부산국제영화제 ‘블랙리스트’ 소동에서 보였듯이 문화정책과 관련해 부산시는 그동안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문화헌장은 그런 과거 행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성의 결과일 테다. 어렵사리 마련된 문화헌장의 내용들이 부산시민의 삶 깊숙이 뿌리내리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부산시는 관련 법적, 제도적 조치를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지금 부산 문화계가 요구하고 있는 ‘인문학 지원 조례’를 만드는 것이 그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상위법인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이미 2016년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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