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리티 인문학 10년 성과 묻히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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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 사업 주도한 김동철 명예교수

10년간 부산대 HK 사업 단장을 맡았던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명예교수.

로컬리티 인문학은 21세기 부산의 새로운 인문학으로 불린다.

그런데 로컬리티 인문학은 현재 새롭게 그 지향을 추슬러야 하는 상태다. 10년간 인문한국(HK) 사업으로 지원 받은 이후, 현재로서는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다.

10년간 이를 주도한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명예 교수를 지난 9일 그의 부산대 연구실에서 만났다(그는 8월 말로 정년퇴직했다). 그는 2005년 이후 12년여 역대 최장의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8~13대)을 지냈으며, 2007~2017년 10년간 진행된 부산대 HK 사업의 단장이었다. 한국민족문화연구소가 HK 사업을 맡았던 것이다.

10년간 200억 들인 부산 인문학 연구
학제 간 연구로 부산 학문운동 집대성
부산대 HK+ 진입 못 해 연구 소강 국면

-로컬리티 인문학이 계속 국비 지원을 못 받게 된 이유는 뭔가?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하지만 골자를 말하면 부산대가 HK 사업의 핵심 조건인 HK 교수(당초 16명) 전임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예 HK+ 사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부산대 HK 사업인 ‘로컬리티 인문학’은 매년 2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 받던 인문학 진흥을 위한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로컬리티 인문학은 HK 사업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 받는 ‘대형 사업’에 속했다. 10년간 ‘대형’은 전국 5곳밖에 없었으며 로컬리티 인문학은 지방대의 유일한 대형 사업으로 학계와 지역사회에 대한 파급력과 영향력은 대단했는데 참으로 아쉽다.”

한마디로 로컬리티 인문학이 HK+ 사업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부산 지역과 인문학계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소문도 별로 나지 않았다.

물론 HK+ 사업 미진입에는 전적으로 부산대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그러니까 지방 국립대의 질식하는 예산 부족 문제에 교육 공무원 정원이 묶여 있다는 따위의 구조적 요인이 있기는 하다. 보건대 이 ‘사건’은 ‘지역’을 더 심화해 나가는 데 따르는 안팎의 난관이 숱하다는 것을 보이는 대표적 사례다.

-로컬리티 인문학은 어떻게 태동한 것이었나?

“1994년 부산대가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것이 한국민족문화연구소였다. 초대 소장을 당시 장혁표 총장이 맡을 정도였다. 한국민족문화연구소는 이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중점육성연구소(6년), 중점연구소(6년)로 선정돼 한국학과 지역학의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2007년 HK 사업 출범에 맞춰 그런 성과들을 아우르고 집약한 것이 로컬리티 인문학이다. 차철욱(역사) 차윤정(어문) 이상봉(정치·외교) 교수가 주축이 되고, 류지석(철학) 교수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많은 토론 과정을 통해 개념화한 것이다. ‘로컬리티’는 굉장히 매력적인 개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했으며, 이례적 관심을 표명한 세계적인 학제 간 연구소인 독일 빌레펠트대의 지프(ZiF) 연구소와도 협정을 맺고 교류 행사를 열었다.”

철학, 사학, 국문학, 영문학, 독문학, 정치학, 사회학이 소통하면서 국민 국가 중심의 근대적 시각을 넘어 부산이라는 장소와 공간의 구체성으로부터 삶의 무늬를 그리려는 것이 로컬리티 인문학이다.

-선생은 조선 후기 부산사를 연구했는데 부산사(釜山史) 연구자의 맥은 어떻게 되나?

“조선 시대와 관련해 부산에서는 선학으로 김의환 김용욱 선생을 들 수 있다. 이 두 분이 왜관 통신사 개항 등과 관련된 기초 자료들을 많이 정리했다. 동학으로서는 이훈상 윤용출 장동표 김현구 등 70년대 학번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부산지역 사료 조사도 하고 동래사료, 한·일관계사료 등을 묶기도 했다.”

이런 바탕 위에서 1980~1990년대 지역문화운동과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현재와 같이 부산에서 40~50대 지역사 연구자의 두꺼운 층을 형성하게 됐다. 여기에 부산발 ‘로컬리티 인문학’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선학과 확대된 후배 연구자층의 중간 가교 역할을 그는 한 셈이다. 그는 “1990년대에 민주화 물결 속에서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시민운동 방식으로 확산했는데 그때 핵심적 역할을 한 분이 부경역사연구소 창립(1994년)을 주도한, 지금은 퇴직한 부산대 사학과 채상식 선생이었다”고 했다. 로컬리티 인문학은 많은 이의 분투가 녹아 있는 그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사실이 있다. 결국 부산대는 HK 교수들을 3개 연구소·교육원으로 분산시켰으나, 모두 전임화했다. 전국 대학 중에서 모범적 예다. 그러나 너무 힘든 소모전을 치른 뒤였다. 현재 로컬리티 인문학이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힘든 과정을 거쳐 전임으로 전환한 HK 선생님들이 힘을 모아 내년이라도 당장 HK+ 사업에 진입해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HK+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로컬리티 인문학을 이어 가야 하고, 전임이 된 분들이 이제 후속 연구자들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3곳으로 흩어 놓은 선생님들을 원래의 한국민족문화연구소로 한데 모아 부산대가 연구소 중심의 대학 연구 풍토를 만들어 가면서 지역에 학문적으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10년 동안 축적된 로컬리티 인문학의 성과를 이어 가는 것이 핵심이다.”

글·사진=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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