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고된 추락… 막지 않는 것은 범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천영철 독자여론부장

부산과 울산, 경남 등 동남권 경제가 곤두박질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자동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경쟁력이 점점 낮아진 것이 주된 이유다. 이런 경제구조 하에서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는 말과 글이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은 흘렀고, 위기는 현실화돼 지금 동남권은 벼랑 끝에 서있다. 경제는 도시를 움직이는 심장이다. 경제가 무너지면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나고, 인구가 급감한다. 결국 그 도시 시민들의 생존권은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무너지는 동남권 경제를 되살리려면 다양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부산의 경우 관광과 마이스(MICE) 산업을 주축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등의 다양한 청사진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해양 수도’ 등의 애칭이 무색하다. 금융단지를 중심으로 추진된 국제금융도시로의 도약도 지지부진하다. 일부 공기업들만 부산으로 옮겨왔을 뿐 특성화된 선도 산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통계청은 얼마전 장래인구특별추계 자료를 통해 오는 2040년쯤이면 인천의 인구가 부산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 334만 명인 부산 인구는 2030년 311만 명, 2070년에는 193만 명으로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1990년대 380만 명이 살던 활기찬 부산은 이제 ‘제3의 도시’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참담하다.

30년 숙원 ‘관문공항’ 여전히 오리무중
부산 등 동남권 손발 묶인 채 고사 위기
“마지막 골든타임 지난다” 민심 절박해
‘제2도시 증후군’ 당연시한 책임 누가 지나



부산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대안으로 관문공항 역할을 할 가덕신공항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은 그동안 기존 김해공항 확장만으로는 추락하는 부산 등 동남권을 구할 수 없다고 정부와 정치권 등에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1980년대 후반, 이런 여론이 형성되고 1990년대부터 이런 읍소가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벌써 30년을 넘긴 숙원인 것이다. 관문공항은 동남권이 세계와 소통하는, 세계가 동남권으로 몰려오는 창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산 사람들은 그동안 관문공항을 통해 세계의 기업이 부산에 자리를 잡고, 부산의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가는 것은 물론 부산에서 시작된 금융·관광·마이스·해양수산 등의 산업이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장면을 꿈꾸었다. 부산 등 동남권의 청년들이 더이상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가지 않고, 부산에서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는 모습을 기대하고 살았다.

33년 전인 1987년 발행된 부산일보 신문을 보자. 그 해 7월 부산일보는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태평양지역학회 학술발표회 토의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태평양지역학회 회장인 미국의 메리 제임스 깁슨 교수는 이때 이미 제2의 도시가 수도의 그늘에 가려 푸대접을 받고 상대적인 침체를 겪는 ‘제2도시 증후군’을 거론하며 부산의 미래를 걱정했다. 특히 깁슨 교수는 “미국에서 부산에 올 때 서울을 경유해서 왔습니다. 직항 노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오사카는 간사이 국제공항을 신축하고 있다지요. 미국서 동경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오사카로 갈수있게 되겠지요. 부산도 국제공항이 필요합니다”라며 미국·유럽에서 부산으로 곧장 올 수 있는 간사이 공항급 대규모 관문공항의 중요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29년 전인 1991년 8월, 김해국제공항의 문제점을 보도한 부산일보 기사는 서두에서 당시 여론을 이렇게 요약했다. ‘김해국제공항은 규모나 시설 면에서 본다면 한마디로 형편 없습니다. 하늘의 관문을 이처럼 낙후된 상태로 두고는 제2도시 부산과 경남지역의 발전은 아예 기약할 수 없어요.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습니다.’

최근 부산 시민들은 부산과 울산, 경남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동남권 메가시티 개념을 도입해야만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동남권이 힘을 합해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적극 촉구하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산의 이런 움직임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통계청의 전망처럼 이대로 가면 수도권만 살고 지방은 완전히 고사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 10월. 부산 등 동남권은 어쩌면 마지막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산의 이런 절박함이 정부와 정치권의 눈에는 당연한 시대적 현상으로 비춰지는 것일까. 최근 여권 핵심 인사들이 김해신공항 백지화와 지역균형발전에 호의적인 메시지를 연이어 보내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단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민심도, 통계도 부산의 다급함을 반증하고 있다. 만약 부산이 이대로 고사한다면 그땐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수십 년전부터 우려됐던 ‘사회적 재난’을 서둘러 막지 않는 것은 명백한 범죄다. 


cyc@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