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는 독에 물 붓기’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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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마야 놀자’에서는 절에서 머물고자 하는 조직폭력배(박신양)와 이들을 쫓아내려는 스님들이 사사건건 충돌한다. 그러자 큰 스님이 문제를 내서 맞추는 쪽의 의견을 들어주기로 한다. 큰 스님의 문제는 ‘새는 독에 물을 가득 채우는 방법’이었다. 이때 박신양은 ‘새는 독’을 연못에 담가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역시 사무장병원과 같은 불법 의료기관으로 인해 보험재정의 독이 새고 있다. 사무장병원이란 의료법에 허용된 개설 주체가 아닌 비의료인이 의료인이나 법인 등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불법 의료기관을 말한다. 사무장병원은 2009년부터 2020년 6월까지 1,621곳에 달하며, 부당하게 지급받은 금액은 3조 4,869억 원에 이른다. 부당확인 금액은 2010년 81억 원에서 2019년 9,475억 원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기본적 문제는 의료인이 아닌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운영하면서 환자의 생명이나 안전은 뒷전으로 한 채 돈벌이만 추구하는데, 있다. 국민이 낸 보험료로 조성한 재정을 눈먼 돈으로 알고 불필요한 검사나 진료를 일삼고 있다. 둘째는 적정한 의료인력을 갖추지 않거나 과밀병상 운영 등으로 의료 질 저하 문제까지 야기한다. 반면에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커지는 것은 물론, 국가 전체의 국민 의료비도 증가한다. 또한, 보험사기 등 각종 위법행위를 일삼아 선량한 의료인까지 국민 불신의 대상이 되게 만든다. 나가지 않았어야 할 지출로 보험재정이 누수되고, 결국 이것은 국민의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료인들에게도 적정 수가를 위한 재정 여력을 제한시킨다.

건보공단은 보험자로서 사무장병원의 적발 및 부당금액 환수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자금추적을 위한 직접 조사권이 없다 보니 경찰 및 정부 당국에 조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어 신속한 조사가 불가능하다. 경찰은 많은 사건에 밀려 사무장병원 수사는 늘 뒷순위 업무다. 수사 기간은 평균 11개월이 걸리며, 길게는 3년 4개월까지 소요되고 있다. 그동안에 사무장병원은 재산을 은닉 내지 도피하므로 실제 환수율은 2010년 17.3%에서 2019년 2.5%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국민들이 호주머니에서 갹출한 보험재정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조사와 전문성 있는 일 처리, 단속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불법 개설 의심 기관 분석시스템’과 전문인력 등 수사 노하우를 보유하고 보험재정을 보호할 책무성이 있는 건보공단이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건보공단의 특사경 수행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있다. 의협은 의료인 스스로 적발하고 징계하는 ‘자율징계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동양적 정서상 같은 동료 의사가 연루된 불법행위를 고발하고 스스로 조치를 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공단에 특사경 권한을 주면 급여조사가 확대될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것은 공단의 특사경 수사 범위를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공단, 의료계가 함께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사전에 수사 대상 선정단계에서부터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단에 특사경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새는 독’이 ‘깨진 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구태의연한 방법보다는 더욱 과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건강보험의 ‘새는 독’에 국민들이 보험료를 붓게 할 것인가?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보험자인 공단이 ‘새는 독’을 막을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승환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산경남지역본부 의료기관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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